◇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포스터를 그린 맥스 달튼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마이아트뮤지엄의 전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은 일러스트레이터인 '맥스 달튼'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중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아는 이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셀러인 '웨스 앤더슨 컬렉션' 시리즈 속 삽화는 한 번쯤 보았을 것이라 장담한다. '맥스 달튼'은 바로 '웨스 앤더슨 컬렉션'의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웨스 앤더슨 컬렉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전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리게 된다. '맥스 달튼'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포스터를 그린 장본인이다.
그래서인지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전시'로 불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맥스 달튼'을 해당 영화의 미술감독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이번 전시가 단순히 그 영화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2014년 개봉되어 국내 관객 수 83만 명에 달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기에 그 유명세의 여파가 전시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일 터다. 상당수의 전시 관람객들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리며 전시장을 찾게 되는데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의 매력은 하나의 작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것에 있다.
◇ 영화/영상 전공자가 해설해 주는 영화 일러스트
이번 전시 관람에서 주요했던 것은 도슨트 정우철의 해설을 듣고자 했던 부분이다. 잘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정우철 도슨트는 미술전공자가 아니고 대학시절 '영화/영상'을 전공한 사람이다. 도슨트를 직업으로 삼기 전에는 모 인강 사이트에서 영상 제작을 담당하기도 했다.
미술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슨트 정우철이 업계에서 각광받게 된 것은 전시 해설을 하나의 영화 시나리오처럼 각색하여 진행한 점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정우철은 전시마다 스토리를 만들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곁들여 매력적인 해설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은 거장들의 일대기와 작품마다 가지고 있는 에피소드 등을 풀어내었는데 전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에서는 조금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맥스 달튼'이라는 인물의 개인전이기는 하지만 1975년생의 현존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1800년대 화가들처럼 풀어내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그러한 듯 보였다.
대신 영화와 영상을 공부한 전공자답게 '영화'라는 콘텐츠의 근간과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들을 '맥스 달튼'의 작품들과 연계하여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준다. 태블릿을 이용해 관련된 영상들의 감상 포인트를 알려준다거나 작품들에 숨겨진 이스터에그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의 해설을 진행하는 정우철 도슨트는 '수어지교(水魚之交)'라는 사자성어를 떠오르게 했다. 마치 '물 만난 고기'와 같이 작품이 표방하는 '영화' 이야기를 열심히 해석해 주는 모습에서 전공했던 분야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이 은연중에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 지난 반세기를 총망라하는 '맥스 달튼'의 작품 세계
전시는 총 다섯 가지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맥스 달튼'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1978년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시리즈물로 사랑받고 있는 '스타워즈'로 대표되는 SF 공상과학 영화들을 오마주 하는 작품들과 TV 시리즈들을 주제로 하는 '우주적 상상력'이라는 타이틀의 섹션을 시작으로 한다.
지난 50년간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들을 한 군데 모아둔 것만 같은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 섹션은 스필버그, 마틴 스콜 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스파이크 리 등 이름만 들어도 감탄을 금하기 어려운 거장 감독들의 영화 일러스트들을 감상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웨스 앤더슨 컬렉션'의 삽화 작업과 관련해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그리고 노스텔지어'라는 주제의 섹션에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인생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몽환적인 영화의 배경이 마련된 공간으로 마치 촬영 세트장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후에는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의 다양한 작업을 볼 수 있는 '맥스의 고유한 세계' 섹션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가 영화를 오마주 하는 작품들만을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여러 가지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나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는 '화가의 작업실' 시리즈는 미술 역사에 대한 재조명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음악을 듣는다는 '맥스 달튼'은 일러스트레이터 이전에 뮤지션을 꿈꾸기도 하였다. 시대를 아우르는 기타리스트, 보걸리스트, 재즈 연주자 들의 모습으로 채워진 작품들이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반증해 준다. 그의 작품들 중 최단 시간에 매진되었다는 지미 헨드릭스 가족과 협업을 통해 만든 한정판 포스터가 눈길을 끄는 공간이다.
◇ 영화를 좋아한다면 꼭 봐야 하는 전시
국내 문화 예술계와 관련된 콘텐츠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주 거론하는 것이 '영화'는 포털사이트의 메인 카테고리를 장식하고 '공연'과 '전시'는 서로 다른 영역임에도 불구 하나의 범주에 묶여 하위 카테고리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구분을 하자면 '전시'보다는 '공연'이 좀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접근이 용이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순서이기도 하나 각각의 영역에 대한 본질적인 차이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소견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화'라는 콘텐츠를 '전시'라는 영역에 가져온 이번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는 상당한 파급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라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를 새로이 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전시를 관람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 콘텐츠들의 다채로운 콜라보를 시도하는 '맥스 달튼'이기에 영역을 넘나드는 시대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신호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와 음악과 전시를 총망라하는 감각적인 트렌드세터들의 공간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도 하게 된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장의 한편에는 '맥스 페어'라는 주제로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 작품을 판매하고 있어 전시장 밖에서도 그의 포스터 작품들을 충분히 감상하고 소장 또한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하게 여겨진다.
자신을 영화 마니아라고 생각한다면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장을 찾아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맞춰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전시 말미에 마련된 M(ovie)BTI를 통해 본인의 영화 취향을 알아보는 것도 추천하는 관람 포인트이다.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는 오는 7월 11일까지 삼성동 섬유아트센터빌딩에 위치한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계속된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