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기업 중고차 사업 진출,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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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

최근 우리는 오랫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단체들은 자동차 제조사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서 소비자의 80%가 기존의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하고 혼탁 및 낙후돼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약 63%가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급기야 지난 10일 자동차 전문 시민단체들이 '중고차 시장 전면 개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단체들은 중고차시장의 정보 비대칭과 불투명성으로 인해 오랜 기간 해를 입어 왔다고 주장한다.

중고차판매업은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참여가 제한됐다. 6년간 스스로의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하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으나 달라진 건 전혀 없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날로 높아지는 이유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019년 말 중고차 시장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미지정을 추천했다. 그럼에도 중소벤처기업부는 아직까지 심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차 산업은 미국, 유럽 등 해외에 비해 뒤처져 있다.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미흡한 것도 결국 소비자의 신뢰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중고차 수요는 신차의 1.2배 수준인 반면에 미국, 유럽 등 선진시장은 신차의 2배 수준이다. 산업의 내적 경쟁력은 이보다 더 뒤져 있다.

미국 온라인 중고차 판매회사 카바나(Carvana)는 구매 후 7일간 전액환불 및 각종 기록의 정확한 제공이 장점이고, 카맥스(Carmax)는 '중고차 정찰제'를 도입했다. 영국의 드로버(Drover)는 중고차와 모빌리티 서비스의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해외시장의 중고차 산업은 유통·판매의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미래 산업으로 확장돼 가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중고차 산업은 가장 기본이 되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점차 도태되는 상황이다.

현재 미국, 일본,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는 거의 모든 자동차 브랜드가 '인증 중고차' 상품을 운영한다. 자기 브랜드의 중고차 중에서 일부 상품성이 좋은 차량을 제조사가 직접 인증해 판매하는 형태다. 인증 중고차는 신차와 일반 중고차 수요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일반 중고차보다는 비싸지만 신차보다 싼 가격에 자동차 제조사의 품질 검증과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소비자 권익이 향상하는 효과도 있다. 더욱이 일부 수입차 브랜드들은 국내에서 이미 인증 중고차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완성차 제조사들은 인증 중고차에 한해 시장 진출을 제안하고 있다. 수입 인증 중고차 사례를 감안하면 시장점유율이 15% 정도일 것으로 예측된다. 인증 중고차로 제한할 경우 기존 중고차 업계가 가장 우려한 독과점 및 가격 상승 이슈에 대한 걱정을 다소 덜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미래에 시작될 전기차 및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중고차 거래를 위한 진단·점검 관련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제작사의 참여는 필수다.

물론 중고차 시장 개방에 대한 기존 업계의 우려와 거부감에 공감한다. 그러나 중고차판매업이 생계형 업종으로 지정된 후 6년의 세월 동안 누적된 피해로 인한 소비자의 실망감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중고차 시장의 본질은 결국 소비자에게 있다. 좋은 상품, 좋은 판매자, 좋은 시장은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소비자를 배제하고 시장을 논할 수 없다. 소비자의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시장 환경을 구성하면 자연스레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이 해결되고, 미래 산업의 발판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학 자동차학과 교수 leehg@dd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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