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네안데르탈인'이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 정치권에서 이를 촉발시켰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마스크 착용 의무 전면 해제를 주장하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네안데르탈인의 사고”라고 규탄했다. 마스크를 안 쓰는 것은 이미 도태된 원시인이나 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공화당은 이에 네안데르탈인을 정치 상징으로 삼을 조짐도 보이고 있다.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은 “네안데르탈인은 사냥꾼이자 수호자”라며 네안데르탈 코커스(미국 정당집회)를 만들겠다고까지 했다. 약 4만년 전에 사라진 존재가 정치 이슈로 거론된 특이 사례다.
네안데르탈인은 바이든 대통령 발언에서처럼 '원시인'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30만~35만년 전 나타나, 유럽과 아시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 '네안데르' 계곡에서 뼈가 발견돼 네안데르탈인으로 명명됐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보다 키는 작지만 체격은 더욱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깨너비에 영향을 끼치는 쇄골 길이가 현생 인류 평균보다 5㎝나 길다. 근력이나 내구성도 월등하다. 다만 그만큼 많은 식량이 필요하고 지구력도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석기와 불을 사용했고 우리처럼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사소통 분야는 오랜 논쟁거리였는데, 최근 미국 빙엄턴 뉴욕주립대 등 국제 연구팀이 이들의 두개골을 3D 모델로 만들어 분석, 의사소통 능력을 입증했다.
멸종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4만년 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벨기에 '스피 동굴'에서 나온 화석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를 근거로 2만4000년 전까지 생존했을 거라는 일부 주장도 있다. 다만 최근 프랑스 연구팀이 재차 연대 측정을 진행해 스피 동굴 화석이 4만년 이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네안데르탈인의 멸망에는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다. 현생 인류가 직접 네안데르탈인 학살을 자행했다는 설도 있고 오랜 경쟁 결과 간접적으로 도태에 영향을 끼쳤다는 설도 있다.
자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 관련 약 4만2000년 전 일어난 '지자기(지구 자기장) 회유' 현상을 주목한 연구도 최근 나왔다. 지자기 회유 당시 지구를 지키는 자기장이 크게 약화 됐는데, 이 결과 다양한 자연 재난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지자기 회유 시점은 네안데르탈인 멸종 시점과 비슷하다.
네안데르탈인 멸종 시나리오 중에는 '흡수설'도 있다. 오랜 혼혈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에 흡수됐다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생존시기는 20만년 가까이 겹친다. 생물학적 여건만 된다면 혼혈이 이뤄지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학계에서는 생물학적으로 혼혈이 가능했다는 주장과 불가능했다는 주장이 공존했는데, 현재는 가능했다는 쪽의 연구 결과들이 쌓이고 있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텍사스 A&M대 연구진은 현생 인류 조상과 네안데르탈인 간 유전적 차이가 북극곰과 불곰, 코요테와 늑대 사이보다 작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북극곰과 불곰, 코요테와 늑대는 교배가 가능하다.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자손이 태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생 인류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의 것이 일부라도 포함돼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금은 급기야 네안데르탈인을 오가노이드(미니 장기)로 되살리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 UC샌디에이고 연구진은 지난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진 뇌 조직 덩어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