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악재 속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11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첫 회의를 연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위원들이 내놓을 의견에 노사 모두 관심이 쏠린다.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맞이하는 점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위원들의 어깨에 얹어진 무게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사용자간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노사가 코로나19 사태와 고용정책을 바라보는 시각도 극과 극이다. 어느 때보다 힘들고 지루한 협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변수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고용과 경기 침체다. 각종 경기지표를 살펴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침체에 빠진 현 상황이 잘 드러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5월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23.7% 감소한 348억6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5월 역시 전년동기대비 수출이 9.8%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갖춘 우리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수입 역시 21.2% 감소한 344억2000만달러에 그쳤다.
경기동향도 코로나19로 인해 내리막을 걷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4월 전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5.0% 감소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서비스업 생산(-6.1%)은 대면접촉이 많은 숙박·음식점업(-24.5%), 예술·스포츠·여가서비스업(-44.9%) 등을 중심으로 큰 폭의 감소세를 이어갔다., 광공업 생산(-4.5%)도 주요 수출품목인 반도체의 증가 폭이 크게 축소(45.3%→17.3%)되고 자동차(-19.1%)가 급감하며 감소 전환했다.
KDI 관계자는 “제조업 생산이 세계 경기침체로 주요 수출품목이 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큰 폭으로 위축됐다”면서 “제조업 출하가 전월보다 감소하고 제조업 재고율은 상승하는 가운데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내외 수요 감소로 제조업 부진이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소비 위축도 지속됐다. 4월 소매판매액은 전년 동월 대비 2.2% 감소했고, 서비스업생산도 1년 전보다 6.1% 줄었다.
당분간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국내 주력산업인 제조업 고용부진도 지속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8일 발표한 '5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제조업 고용보험 가입자는 352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대비 5만4000명 감소했다. 감소폭은 1997년 IMF 국제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1998년 1월 당시 고용보험가입자는 9만9500명이 줄면서 최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분야별로는 증가세를 유지하던 전기장비 업체가 4000명 감소로 전환했고 기계장비는 전달 4800명 감소에 이어 5월도 5800명이 줄었다. 전자통신 업종은 생산라인 해외 이전과 구조조정 등으로 1만1800명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해외 판매부진과 자동차 산업 불황에 따른 생산량 감소 등의 영향으로 '자동차 부품' 중심으로 운송장비와 1차금속도 감소폭이 확대됐다. 금속부품 제조업에서 2400명이 감소했고, 완성차 제조업체 1800명,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7300명 가입자가 각각 줄었다.
고용부는 제조업의 고용 침체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기섭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은 “5월 들어 서비스사업 종사자 가입자 감소폭은 둔화됐지만 제조업 영향은 확대되는 추세”라며 “이는 해외 공급망이 회복되는 것과 함께 3차 추경이 시장에 투입되는 시점이 맞물려야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코로나19 악재 속 '인상' 힘들다”
사용자 단체 중 중소기업은 최저임금 인상에 강력히 저항하고 나섰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난 8일 일자리창출 간담회에 참석해 “지금도 정상적인 임금지급이 어려워 사업의 존폐를 고민하는 상황인 만큼 내년 (최저임금)수준은 최소한 올해와 동일하게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중소기업 600개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내년 최저임금 적정 수준 관련해 '동결' 또는 '인하'로 답한 사업장이 88.1%에 달한다.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인상될 경우 44.0% 기업이 '신규채용 축소'하겠다고 답했고 14.8%는 '기존인력 감원'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영악화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76.7%는 전년 대비 현재 경영상황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75.3%는 1분기 실적이 나빠졌으며 65.7%는 2분기도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감원이 불가피한 시기에 대해서 33.0%는 '6개월 이내', 45.0%는 '9개월 이내'로 응답했다. 현재 임금수준에서도 고용유지조차 매우 힘겨운 상황이 지속된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해외에서는 실제로 최저임금 인하 움직임이 나타났다. 독일 집권당이 일자리 확충방안으로 최저임금 인하 카드를 꺼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인 기민·기사당 연합은 최근 '독일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경제 재시동을 위한 10가지 과제'라는 제목의 정책 제안서를 마련했는데 내년에 적용할 최저시급을 동결하거나 인하하는 방안이 담겼다.
최저임금 테이블에 마주앉을 노동계 어깨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이 기대보다 낮게 결정되면서 양대 노총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했던 6명 위원이 임기를 2년여 남겨놓고 지난해 사임하고, 올해 새롭게 선임됐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난해 최저임금이 2.9% 인상에 그치면서 위원회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사퇴했다”면서 “최저임금협의에 임하는 위원들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코로나19 대책을 위해서라도 현 인상 기조가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과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을 내놓으면서 고용이 유지되고 소비가 회복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기회가 된 점도 있다”면서 “최저임금 인상이 소비 선순환을 이끌어 고용유지와 경영난 극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