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새로운 국제질서, 코로나 이후 과학기술혁신의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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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연구개발분석단장

글로벌 분업체계 붕괴 우려는 비단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퍼스트' 기치 아래 리쇼어링을 강조해 왔고, 국내에서는 지난해 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소재·부품·장비의 공급 차질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공고화돼 왔던 글로벌 분업체계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자국중심주의가 더욱 강화되면서, 글로벌 분업체계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 생산 차질은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필수 물자에 대한 자급도를 높여 향후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자국중심주의 강화나 글로벌 분업체계 붕괴와 같은 국제질서 변화를 과학기술 분야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과학기술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글로벌 공공재라는 속성이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이 지니는 높은 불확실성과 엄청난 파괴력은 개별 국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보다 글로벌 협력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 부분에서의 글로벌 협력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였다. 국내 확진자가 없던 1월 중순 일부 국내 업체들이 진단키트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를 통해 코로나19 유전자 염기서열이 공유되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독일에서 개발한 진단시약 정보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이미 과학기술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협력 플랫폼이 발달해 왔다. 바이러스 데이터를 공유하는 국제인플루엔자데이터공유이니셔티브(GISAID), 감염병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감염병혁신연합(CEPI)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 분야 글로벌 협력은 아직까지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감염병 분야 글로벌 협력연구에 대한 정부 투자액은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는 있으나, 2018년 기준 1년 동안 163억원에 그쳤다. 2017년 신속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국제기구 CEPI가 출범할 당시, 일본 정부가 제공한 기여금이 1억2500만달러(약 1500억원)에 이르렀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방역모델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국내 진단기술이 각광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국제 위상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중국 견제라는 목적이 있긴 하지만, 올해 가을로 연기된 G7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표나 영국이 구상하는 D10 체제에 한국이 포함된 것은 국격 변화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위해 국제기구나 해외 연구자들과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고, 과학기술 분야 글로벌 의제들을 주도하는 것은 무엇보다 의미있고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K-방역에서 K-바이오, K-과학기술로 이어져,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글로벌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진 미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연구개발분석단장 mlee@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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