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스팀으로 불거진 '게임 등급분류제도'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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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게임을 유통할 때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받지 않으면 불법으로 처벌한다'는 대원칙은 2006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 이후 지금껏 이어진다. 전부개정이 예정된 게임법 초안 역시 등급분류를 받지 않은 게임은 불법 게임물로 규정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글로벌 플랫폼 스팀에 유통하는 해외 게임은 관행적으로 심의를 받지 않고 서비스됐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불법 게임물이 방관 속에 유통됐다.

해외 게임물에 등급분류제도를 적용시키기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체가 한국에 없었다. 국내법을 역외사업자에게 강제 적용할 수 있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했다. 규제기관이 묵인하는 동안 국내 스팀 이용자는 100만명에 달해 접속을 차단하면 파급 효과가 막대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회색지대로 놔뒀던 곪은 부분이 터졌다. 등급분류제도 자체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거론된다.

◇등급분류제도 개선 공방 가열

등급분류제도는 '바다이야기' 때문에 등장했다. '게임물 윤리성, 공공성을 확보하고 사행심 유발 또는 조장을 방지하며 청소년을 보호하고 불법게임 유통을 방지한다'가 등급분류 기본정신이 된 배경이다.

그래서 국내 심의제도는 유럽 PEGI, 미국 ESRB 등 해외 게임 심의기구가 자율 규제로 출발한 것과 달리 강제성이 높다. 국내 다른 콘텐츠에 비해서도 사전 심의 수준이 높은 편이다. 법으로 게임에 대한 사전심의를 의무화한 곳은 한국 외에 중국, 태국, 호주, 독일 정도다.

등급분류로 말미암은 논란은 꾸준했다. 구글과 애플은 지난 2010년 국내 심의제도 때문에 자사 오픈마켓 내 게임 카테고리를 폐쇄했다. 2011년 모바일 게임 자체등급분류 기준이 바뀌면서 해당 서비스를 재개했다. 페이스북은 등급분류 문제로 2014년 8월부터 현재까지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2010년과 2019년 두 차례, 비영리 목적으로 개인이 만든 게임도 등급분류를 받아야 해 논란이 됐다.

전문가는 등급분류제도, 즉 사전심의·검열 존치 필요성을 심층 재고해 규제법령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제도 개선 역시 마찬가지다.

◇스팀, 법 테두리에 포함시켜야

개정 필요성에 입장은 같이 하지만 차이는 존재한다. 여론은 두 갈래다. '악법도 법이다. 법이 고쳐지기 전까지는 지켜야 한다'와 '악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 악법은 고쳐야 할 대상일 뿐이다'다.

전자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충분한 사회적 검토를 거쳐 폐지되기 전까지 준수 여부를 결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한국인 대상 게임은 해외와 국내 사업자를 가리지 않고 관련법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스팀이 묵인 속에 불법 게임을 유통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밸브가 가까운 시일 내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로 지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주장의 근거다.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최근 3년간 평균 매출액이 일정 금액 이상이어야 한다. 게임제작업, 배급업, 제공업을 영위해야하는 업체여야 한다.

밸브가 매출을 공개하면 그에 걸맞은 법인세 등을 내야 한다. 역외사업자들이 정확한 국내 매출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총 8곳이다. 구글, 애플, 삼성전자,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SIEK),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오큘러스, 원스토어, 카카오게임즈다. 삼성전자와 원스토어, 카카오게임즈 3곳을 제외하면 모두 외국계 회사 국내 법인이다. 밸브가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지정 의지가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는 “개선 과정임을 염두에 두고 불법 게임물을 유통하고 있는 스팀을 법 테두리로 품으려는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때까지는 일관적이고 공평하게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효성 탓에 회의적 시각도 존재

후자는 검열을 헌법이 인정하지 않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유독 규제에 피해를 많이 입은 심리가 반영됐다. 현행 심의제도는 게임에만 유별날 정도로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도서, 음악, 방송 등 다른 문화 콘텐츠는 사전심의 없이 배포된다. 배포 후 후 문제가 적발될 시 법적 조치가 진행된다. 민간으로 이양된 광고 심의도 게임만큼은 사전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제출되기 할 정도다.

한국의 독특한 게임법을 해외사업자에게 강요해봐야 실효성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도 고려됐다.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게임의 유통은 허락하되 합리적인 방안을 찾자는 설명이다.

전병헌 전 의원이 2014년 주장한 내용과 같다. 그는 “당장 스팀 게임에 대한 한글 서비스 심의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잘못된 심의구조 개편에 즉각 나서야 한다”며 “개편하는 기간에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스팀 게임 한글 서비스에 유예 기간을 적용,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다만 5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진전은 없다.

밸브는 작년 게임개발자콘퍼런스(GDC)에서 한국 스팀 PC방 서비스를 발표했다. 국내 상장기업 플레이위드가 밸브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2분기 중 서비스할 예정이었다.

스팀 PC방 서비스는 PC방 고객이 게임을 구매하지 않아도 스팀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해주는 사업 모델이다. 스팀 PC방에서 서비스되는 게임은 당연히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토대로 밸브가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지정을 위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게임위와 지속 협의 중이라는 점에서 밸브가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지정 의지가 있다고 해석한다.

업계 전문가는 “민간 이양을 위한 규정이 개선되고 있으나 등급분류제도 자체는 유지된다”며 “기존 게임물 심의에 있던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할 기회가 되야한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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