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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 때문인가요?” 인공지능(AI) 발전을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해 AI대학을 설립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아직 국내 대학 연구비 규모가 세계 수준의 대학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왜소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2000년 초반에 비해 대학 연구비는 두 배 가까이 증가해 5조원을 육박하고 있고, 우리나라 연구개발(R&D) 규모도 20조원을 넘었다는 사실에 비춰 보면 결코 연구비만이 문제는 아니다. 연구비 증가에 따른 국내 연구 능력의 향상은 인정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한 대학과 정부의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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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의 연구는 주로 개별 교수 중심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기획을 통해 연구 과제를 도출하면 공모로 수행자를 선정하는 형식이다. 과거에 비해 정부 주도의 하향식 과제기획은 지양되고 있지만 지속 발전을 위해 기획부터 개인이 아닌 대학연구소의 참여 폭을 늘려야 한다. 특정 주제의 장기간 연구로 세계 수준에 오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이를 통해 각 대학은 국책 연구소 이상의 수준을 갖춘 연구소를 육성함으로써 연구의 다변화를 이룰 수 있다.

대학연구소 활성화로 교수와 학생 중심에서 연구원 주도의 R&D로 자연스럽게 진화할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기술 혁신을 주도할 핵심 인재 확보와 이들의 산업계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키우리(KIURI) 사업을 시작하고 향후 확장할 계획임을 밝혔다. 대학이 고급 전문 인력이 부족한 기업을 지원하고 박사급 인력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처방으로, 적극 환영한다. 단지 우리나라 산업 환경이 연구 인력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오히려 대학연구소에 전문연구원 제도를 정착시켜 중소기업과 협력하는 체제를 갖추는 전략이 현명해 보인다. 전문 인력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고, 중소기업은 인력이 아닌 내용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연구소는 현재 과제 종료와 함께 연구가 중단되고 다른 과제를 찾아 움직이는 교수의 '참새 연구'를 종식시키고 세계 수준의 연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과제 중심에서 주제 중심으로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전문연구원이 교육에 참여함으로써 인력 양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수 있다. 교수 사회의 진입장벽을 허물어뜨리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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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구소 정착을 위해 구태의연한 대학의 규정과 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연구 체계를 혁신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무늬만 산·학 협력인 현실을 벗어나 R&D 성과를 산업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대부분의 R&D 선진국은 대학 명성만큼이나 탁월한 소속 연구소를 자랑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스탠퍼드대와 버클리대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형성한 실리콘밸리를 배워야 한다. 소수의 부정 방지와 형평성만을 고집하다가 다수의 이익과 미래를 놓치는 무사안일주의는 이제 버릴 때가 됐다.

21대 국회에서 과학기술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정보통신기술(ICT) 융합포럼이 설립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ICT와 R&D 전문가의 목소리가 모깃소리보다 작던 과거 국회에 비교하면 대단한 발전이다. 법과 규제 만들기에 급급하지 않고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대학연구소 조성에 기여하기를 응원한다. 지금까지 인기와 영합해 빈손으로 국민 앞에 나서는 선배들에게 신선한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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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