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과 데칼코마니, 연극 '흑백다방'

2020년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연극의 해'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대한민국 연극제'의 일정이 연기되었고 대학로에 위치한 어느 소극장은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해 폐관을 결정했다는 씁쓸한 소식이 들린다.

문화 평론가로 유명한 이어령 씨가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1990년 예술 장르 지원을 위한 '예술의 해' 사업은 1991년 '연극·영화의 해'로 시작되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독자적인 '연극의 해'로 도래했기에 이 시국이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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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흑백다방' 포스터 / 예술의전당 제공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는 요즘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연극 '흑백다방'은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2014년 처음 무대에 올려졌던 연극 흑백다방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터키, 일본 등 해외 각국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며 현지의 배우들과 함께 선보여진 바 있다.

우리나라 국적의 극작가 중에서는 최초로 영국 작가협회(THE SOCIETY OF AUTHORS)의 회원 자격을 취득한 차현석 작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이 공연은 아시아권 뿐만 아니라 영어권 국가들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머지않은 시기에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기도 한 연극 흑백다방은 1980년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내와의 사별 후, 아내가 운영하던 흑백다방을 물려받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차와 상담을 제공하는 다방 주인(김명곤 분)은 일 년 365일 중 단 하루 아내의 기일에만 휴식을 취한다.

하필이면 쉬는 날인 아내의 기일에 꼭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손님(윤상호 분)이 흑백다방을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쩍 마른 체구에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시선조차 한곳에 두지 못하는 손님이 다방 주인은 내심 못마땅하다.

다방 주인은 그러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손님과의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전직 경찰로 활동하면서 과오를 범했던 지난날을 토로하며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손님은 다방 주인의 잊고 싶은 과거 속 인물이었고 퍼즐 조각이 자리를 찾아가 듯 아픈 과거를 끄집어 내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들과 대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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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흑백다방'의 무대 / 사진 : 정지원 기자

연극 흑백다방은 극 중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이야기가 투영되는 현실의 상황들과 시의적으로 닮아있다.

초연 이후 400회의 공연을 이어왔던 연극 흑백다방이 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는 우리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시기적으로는 모두 다를 수 있겠지만 세계 각국들도 '민주화'라는 시대적 고통을 거쳐왔기 때문일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우리의 이야기가 전 인류 공통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감히 영화 '기생충'과 데칼코마니의 형태를 가져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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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흑백다방' 무대인사 / 사진 : 정지원 기자

장르적인 특징에 따라 작품을 접하는 이의 숫자나 그 전파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연극 흑백다방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오롯이 담고 있다 느꼈다.

영화 기생충이 부와 빈의 경제적인 차이에서 발생하는 부끄러운 세계인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면 연극 흑백다방은 삶의 주체가 되기 위해 지나야 했던 전 세계 사람들의 힘겨웠던 과도기를 주제로 과거의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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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흑백다방'의 배우 김명곤 / 사진 : 정지원 기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곤경에 처한 지금의 시기에 희망과 이겨내어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북돋게 하여 준 연극 흑백다방이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에게 용기와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관람이 가능했다는 점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연극 흑백다방은 분명 다시 무대에 올려질 것이고 언젠가는 접할 기회를 다시금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과거의 잘못은 고치면 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이기에 인간이기에 우리는 앞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K-컬처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