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주요 경제주체들은 한목소리로 현 위기감을 호소했다.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을 요청하는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하고 경제 활력을 되찾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의 토론과 건의 등을 경청한 뒤 '속도'라는 단어만 5번 언급하는 등 경제위기 극복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는 코로나19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 충격에 대비하는 한편, 비상경제 상황 타개를 위한 범국가적 대응 차원에서 마련됐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경영계와 노동계, 중소기업·중견기업·벤처기업·소상공인 등 기업, 금융계, 가계, 정치권, 경제부처 등 모든 경제주체가 한 자리에 모여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
원탁회의에는 경영계를 대표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박용만 상의 회장은 “자금경색을 느끼는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다.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나 스피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행정비용을 줄이고, 속도를 건너뛰는 파격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이 중점 추진하는 기업인 예외입국에 대해선 재계도 각국에 협조요청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현금보단 경제 주체의 소비를 유발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최근 일부 지자체가 개인에 현금을 주자는 주장을 하는 데에 대한 반박이다. 경영난에 처한 기업을 위해 금융기관 대출 완화와 신용대출 확대, 통화스와프 확대, 특별근로시간 확대, 특별연장근로제 보완 입법, 국민연금 및 4대 보험료 납부 유예 등을 제시했다. 손 회장은 “상징적으로 법인세 인하를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노동계를 대표해선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과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자리했다. 특히 그동안 정부행사 등에 불참하던 민주노총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셧다운 노동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부가 집중된 재벌과 대기업이 고통을 분담하려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현대그룹이 협력사 직원들에게 30억원을 (현금)지원하기로 한 것을 매우 평가한다. 이런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집회 연기 뿐 아니라 대책을 세우는 자리에 참여해 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동명 한노총 위원장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속 과감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간 사회적 약자가 더 약한 사람을 밀어내는 식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며 “(과거와 다르려면)재난 시 사회공동체가 나를 방치하지 않는다고 믿어야 신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양대노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에게 이 같은 자리를 자주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노조가 집회를 자제하고 임단협을 조정하는 건 평소라면 불가능에 가깝다”며 “노사가 모두 성숙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벤처업계와 소상공인을 대표해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과 김임용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권한대행이 발언했다.
안건준 벤협 회장은 “IMF 시절 수많은 벤처기업이 역할을 해서 극복에 기여했다. 이번에도 수많은 벤처기업이 진단키트를 만들거나 발 빠르게 움직였다”며 “대기업은 못하는 벤처의 신속함이 있다”고 말했다.
김임용 권한대행은 “소상공인 매출이 60~90%줄었다”며 3개월간 긴급 구호 생계비 200만원 지급·신용등급평가기준 제고·만기 연장 대출 완화 등을 요구했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대표해선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과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수출 부문을 대표해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대통령께서 예외적으로 기업인 입국을 허용하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추진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며 “기업은 입국 제한 조치가 수출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루 빨리 해결돼 출장길이 열렸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시중 은행을 더 적극적으로 지도해 만기 연장을 해 달라며 추가 대출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고용 유지 지원금 요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면서 약자가 약자를 돕는 정신으로 중소기업은 소상공인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은행이 중견기업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며 대출심사를 하지않는 등 파격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김영주 무역협회장은 “공장이 많은 울산 등의 병원에서도 정부확인서를 떼 주면 좋겠다”고 했다. 지방세제 정비도 필요하다며 지방세 부담금 중 교통유발부담금을 미루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계에선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 회장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의견을 개진했다.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은 “현장 목소리를 세심히 듣고 이자 납입 유예 등을 추진하겠다. (현장에서 속도가 안 날 경우)필요하면 지역신보에 은행 직원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이 적극 나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금융권 전체가 합심해서 범금융권 협약식을 갖고 공동으로 움직이자고 제안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제안된 의견에 대해 “관계 부처와 협의해 할 수 있는 조치는 신속하게 시행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마지막 발언에서 “보다 더 큰 결단이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은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에서 결단을 해 나가도록 하겠다”면서 코로나19 경제 대응에 '속도'를 재차 강조했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