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차산업혁명위 '들메끈' 고쳐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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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으뜸 화두라면 4차 산업혁명이다. 도처에서 너도나도 4차 산업혁명을 말한다.

대통령직속위원회 가운데 혁명이란 단어가 들어간 위원회는 단 하나다. 4차산업혁명위원회(4차혁명위)다. 기존 제도·관습·방식을 단번에 뒤엎는 게 혁명이다. 정부가 위원회 명칭에 혁명이란 단어를 넣은 것은 그만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반응이 혁명만큼 절박하고 위중하기 때문이다.

4차혁명위는 지난 2017년 9월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미래 기술 산업의 국내 컨트롤타워라는 막중한 짐을 지고 출범했다. 4차혁명위에 대한 국민 기대감은 높았다. 정부는 처음에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의 위원장 겸직을 검토했다. 그러다 막판에 민간인 단독 위원장 체제로 변경했다. 당연직 위원으로 5개 경제 부처 장관이 들어갔다.

이를 본 다수는 위원회 역할에 고개를 갸우둥했다. 민간 위원장이 혁명에 비유할 정도로 기존 관습이나 제도를 혁신시켜서 미래 산업설계도를 마련하고 집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다. 초창기에는 장관들 회의 출석률이 낮아 국회에서 지적받는 일도 있었다. 정부 내 위원회 위상을 엿볼수 있는 서글픈 장면이다.

한 차례 연임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6일 임기를 끝냈다. 장 전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정부에서 혁신 성장이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그동안 한 차례도 대통령과 독대를 못했다“고 말했다. 4차혁명위가 나름대로 '규제샌드박스' 특례 승인과 '규제자유특구' 지정 같은 성과를 냈지만 4차혁명위 역할 한계를 밝힌 셈이다.

4차혁명위 성공 열쇠는 대통령의 관심과 지원이 필수 조건이다. 역대 정부에서 많은 대통령직속 기구가 활동했다. 그 가운데 성공한 위원회라면 김대중 정부의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첫손에 꼽는다. 전자정부위는 2001년 1월 발족, 2년여 활동했다. 사무실도 없이 초라하게 출발했지만 이룩한 성과는 창대했다. 전자정부위는 아날로그정부를 오늘날 세계 최강국 디지털정부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전자정부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는 대단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전자정부 전도자를 자임했다. 김 전 대통령은 11대 과제 추진 과정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통해 매주 진도 상황을 보고 받았다.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 부처업무보고, 지방 현장에 나가서도 전자정부 구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점검회의도 청와대에서 열었다. 부처 간 이해 조정도 청와대가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은 전자정부특별위원장에게 전자정부위 운영에 관해 전권을 맡겼다. 그건 힘이었다. 전자정부위 독립 운영을 청와대는 철저하게 보장했다. 전자정부위는 의결기구 역할도 했다. 전자정부위가 선정한 전자정부 사업 11개는 관련 부처가 집행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전폭 지원으로 전자정부위는 미래라는 씨줄과 정보기술(IT)이라는 날줄로 정부가 국민 손안에 들어가는 디지털 세상을 구현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02년 11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자정부 보고회에서 “내 일생에서 오늘같이 기쁘고 뜻 깊은 날이 흔치 않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성공 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장 전 위원장 후임은 아직 미정이다. 후임 위원장을 놓고 청와대가 숙고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혁신을 12번 언급하며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디지털혁신비서관도 신설키로 했다. 문 대통령이 이제 4차 산업혁명 전도사를 자임해야 한다. 정책은 선택이고 타이밍이다. 속도 경쟁에서 지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 패권국이 될 수 없다. 관련 부처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경륜과 공직 경험, 통찰력과 창의력을 겸비한 최적임자를 위원장으로 빨리 임명해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한참 늦었다. 4차 산업혁명의 들메끈을 고쳐매야 한다.


이현덕 칼럼니스트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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