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슨트 정우철과의 첫 만남.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자주 찾는 이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도슨트(docent)’라는 단어는 생소한 것이 아닐까 한다. ‘도슨트(docent)’는 라틴어 중 ‘가르치다’라는 뜻을 가진 ‘docere’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소정의 지식을 갖춘 안내인을 뜻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뮤지엄 패스’(파리와 그 주변지역 60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횟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들고 파리에 가서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인 필자는 도슨트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설명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슨트 들의 설명은 따분했고 미술 분야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라는 사람의 작품 감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보이는 작품 그대로를 느끼고 이해하고 싶은 나에게 도슨트의 설명은 감상의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지난 10월 24일부터 시작된 ‘마이아트 뮤지엄’의 ‘알폰스 무하展’을 추천해 준 지인이 도슨트의 설명을 꼭 한번 들어보라고 했을 때도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근처에 위치한 ‘알폰스 무하 박물관’을 찾았던 과거의 기억을 되새길 겸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시장을 찾았을 뿐이었다.
공교롭게도 ‘알폰스 무하展’의 전시장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슨트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도슨트들과는 다른 하이톤의 목소리가 듣기 거북했고 저렴하다 생각될 정도의 말투가 신경을 자극했다.
속으로 ‘저런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보라고 한 거야? 완전 약장수 같은데?’하고 생각했었다. 추천해 준 지인이 모 대학의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하는 중인 인재 인터라 의아함을 감추기 어려웠고 전시장을 나서면 그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왜 저런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보라 한 것인지 따져 물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신경에 거슬린다는 생각은 정말 잠시. 어느 순간부터 그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슨트의 목소리가 작지 않아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들렸던 탓이리라 생각하고 넘기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직면하게 됐다.
전시의 중반 이후부터 도슨트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무리 뒤쪽에 섞여있는 나를 발견했고 그것이 도슨트 ‘정우철’을 처음 만난 당시에 대한 기억이다.
■ 도슨트가 되기까지 짧지 않았던 인간 정우철의 방황
익히 알고 있던 도슨트들과는 확연히 다른 ‘정우철’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알고자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 제의를 수락해 주었다. 다음은 정우철 도슨트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89년생인 정우철은 우리나라 나이로 31세. 그가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여름 진행되었던 ‘베르나르 뷔페 展’부터 였다고 한다.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도슨트로서 설명을 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 2017년부터였다고.
대학에서 영화/영상을 공부했다는 정우철은 기대와는 다르게 큰 뜻이 있어 해당 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학창시절의 자신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이었고 그냥 평소 좋아하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교육용 영상을 편집하는 일자리를 얻었고 강의를 하는 교수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 보람을 느꼈으나 연차가 오르고 직급이 높아지면서 실무자가 아닌 관리자의 위치에 권태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본인이 원하는 일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막노동, 택배기사, 방송 엑스트라, 행사 관계자 등등 소위 말하는 ‘3D 업종’을 모두 섭렵하던 정우철에게 도슨트라는 직업과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은 전시장 스태프 아르바이트였다. 전시장의 한편을 지키고 서있는 스태프 일을 하면서 도슨트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꼭 도슨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규모가 큰 미술관 등에서 도슨트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에 공고를 볼 때마다 지원했지만 언제나 서류심사에서 떨어졌다는 정우철은 후일 자신이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발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 요즘 청소년/청년들의 문제와 닮아있는 그 방황의 면면
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없었기에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하려고 했었다는 정우철에 말에 어떠한 분야로의 취업을 생각했었는지를 물었는데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 자체가 없었던 그는 대학 진학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대학을 가지 않고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걱정 따위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 시절의 정우철은 무엇이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방황하는 요즘 청소년과 청년 그 자체였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이 40% 이상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거의 2년이 다 되어가고 무기력한 청년층을 뜻하는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족’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지도 오래다.
그러한 의미에서 도슨트 정우철과의 인터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 20대의 중반을 훌쩍 넘어서였다고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청년들의 무기력함에 어른들이 너무 조급해 하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 뒤돌아 보아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청소년과 청년 층이 좋아할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더 많은 기회를 주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심이 필요했고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개개인의 경험치가 있어야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도슨트 교육과정을 들을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던 정우철처럼 청년들에게 잣대를 들이대며 그 틀에 맞추라고만 했던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도슨트가 된 것은 정우철의 운명
사실, 정우철의 어머니는 유화를 그리시는 화가이시다. 어려운 형편에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만으로 화가의 길을 걷고 계신다고 했다. 어머니의 그림이 전시되는 미술관에서 자리를 지켜봤던 경험이 미술관 스태프 아르바이트로 이어졌고 도슨트라는 직업을 접하게 한 전시장 스텝 아르바이트로도 자연스레 연결되었다고 했다.
영화/영상을 전공했던 대학에서도 첫 수업으로 들었던 강의의 담당 교수님이 영화를 공부하려면 그림을 볼 줄 알아야 한다며 미술의 중요성을 꾸준히 가르쳐 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와 관련된 서적을 고를 때에도 반드시 그림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선택했었다고 한다.
미술관과 전시장 스태프 일을 하며 도슨트로서의 기회를 엿보던 그는 2017년 11월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전’에서 도슨트 제안을 받게 되었다. 스태프로의 첫 출근 날에 도슨트 중 한 명의 결원으로 누군가가 자리를 메워야 했고 당시 정우철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던 대리 직급의 직원이 그에게 비어버린 도슨트의 자리를 채울 수 있겠느냐 물었다고 했다.
정우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빈자리를 채웠고 그것을 시작으로 도슨트의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마치 ‘알폰스 무하展’에서 정우철이 진행하는 도슨트 내용과도 같았다.
광고 전단을 만들 대타로 크리스마스에 인쇄소를 지키고 있는 ‘알폰스 무하’를 대체 선택한 ‘사라 베르나르’처럼 펑크나 버린 도슨트의 자리에 아르바이트생 정우철을 대체하기로 결정한 그 대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도슨트 정우철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도슨트로 일하게 되면서 정우철이 맨 먼저 깨달았던 한 가지는 집안에 많은 숫자의 미술관련 서적들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집에 있는 책들이 무슨 책인지 관심조차 없었는데 도슨트가 되고 나니 방 하나를 가득 메우는 수없이 많은 책들이 전부 미술과 연관된 서적들이었다는 말이었다.
인터뷰 당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라며 직접 꺼내어 말해준 내용들은 모두 정우철이라는 사람이 도슨트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이었음을 알리는 복선과도 같은 것들이었기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 정우철이 도슨트로서 유명해지고 싶은 진짜 이유
이제 만으로 2년을 꽉 채운 도슨트 정우철의 경력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전’, ‘샤갈: 러브 앤 라이프展’, ‘에바 알머슨展’, ‘베르나르 뷔페 展’ 그리고 현재 전시 중인 ‘알폰스 무하展’ 이렇게 다섯 가지 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도슨트 계는 여성이 주를 이루어 왔고 미술을 정식으로 수학한 전공자들의 자리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지적 가치에 비해 대우가 좋지 않았고 혹자는 자원봉사라 여기기도 한다고 했다.
경력도 짧고 전공자도 아닌 정우철이 관람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인기를 얻는 것에 색안경을 쓰고 시기와 질투를 일삼는 이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우철이라는 사람으로 인해 도슨트라는 직업에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도슨트의 설명을 듣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정우철은 도슨트로서 더 유명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개인의 소득이나 부가적인 값어치를 따지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도슨트 정우철이 유명해지고 싶은 진짜 이유는 열악한 업계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함이라 했다.
누군가 한 명이 도슨트 계의 스타가 되어 도슨트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대중들에게 그 역할을 각인시켜 전시계나 미술계에 필수불가결한 직업군으로 온전히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그 대표자의 자리에 자신이 서겠다는 굳건한 의지도 보여주었다.
도슨트가 되고 매일 출퇴근 길에 관련 팟캐스트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으며 비전공자인 본인의 핸디캡을 줄이기 위해 미술과 관련된 서적 챙겨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그의 모토는 ‘쉽게, 재미있게, 이야기하듯이’이다.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남녀노소 할 것 없는 관람객 모두를 이끌어 전시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있는 정우철 도슨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도슨트의 중요성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금번 ‘알폰스 무하展’에서 정우철 도슨트의 설명을 꼭 들어보라 추천했던 지인에게 ‘베르나르 뷔페 展’ 때는 어찌하여 추천해주지 않았냐고 원망을 하는 중이다. 전시는 좋아하지만 도슨트를 싫어했던 필자가 앞으로의 전시 관람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게 된다면 그것은 다 정우철 도슨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아직 늦지 않았다. 도슨트 정우철의 전시 설명을 꼭 한번 들어 보시기를 추천한다. 도슨트 정우철의 설명을 다 듣고 나면 영화배우 ‘이선균’ 같아 보이는 그의 외모와 목소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신문 컬처B팀 오세정 기자 (tweet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