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조직개편을 사실상 통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원장 재량으로 처리하던 것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회 승인을 받도록 변경해 출연연 재량권을 과도하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 1일 조직개편을 시행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조직개편안을 마련해 시행하기까지 무려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항우연은 우주 분야 연구원이 10년 이상 보직을 독점, 항공 분야와 우주 분야 간 계파 갈등이 심했다. 이에 지난해 초 신임 원장이 부임하면서부터 갈등을 해소하고 인력 활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규모 조직개편을 추진했다.
그런데 과기정통부 협의 과정에서 수차례 조직개편안을 수정하면서 당초 구상했던 조직개편 규모는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지난 10월 말 NST 이사회 의결을 거친 뒤에도 한 달 이상 과기정통부 장관 승인을 기다려야 했다.
과기정통부가 전에는 통보만 하면 됐던 출연연 조직개편을 지난 2017년 5월 NST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NST·출연연 정관을 개정한 것이 근거였다.
이후 대다수 출연연은 조직개편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5월 이후 신임 원장이 부임해 조직개편 수요가 생긴 출연연은 총 19개로 이 가운데 16개 기관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하지만 차후 체질 개선을 위한 대규모 조직개편을 필요로 하면서도 변화 폭을 최소화 하거나 대안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3개 기관은 이런 저런 이유로 아예 조직개편을 포기했다. 눈에 띌 정도로 큰 폭의 조직개편을 강행한 곳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항우연 등 소수에 불과했다.
실제 A기관은 신임 기관장 취임 후 본부 하나를 추가한 이후에는 최근 팀 이름을 바꾸는 수준의 조직개편만 실시했을 뿐 대규모 조직개편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B기관은 아예 조직 개편이 필요 없는 '비정규 태스크포스(TF)'를 활용하는데 그쳤다.
과기정통부는 기관의 방만한 운영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출연연이 조직개편을 보직자 늘리는데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 방만경영과 조직비대화를 경계하는 차원에서 시행한 것”이라면서 “필요성이 인정되면 대규모 조직개편도 빠르게 진행한 사례가 많다”고 해명했다.
반면 출연연 측에서는 “보직자 정원을 늘리려면 기획재정부 승인을 얻는 절차는 예전에도 거쳐야 했다”면서 “법이 보장한 출연연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면서까지 통제하는 것에 비해 너무 옹색한 변명”이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과기정통부에 확인 취재를 한 이후 출연연 사이에 과기정통부가 발언자 색출에 나섰다는 소문이 돌면서 입을 닫거나 노출을 꺼리는 관계자가 늘었다. NST는 아예 출연연 조직개편 관련 이사회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익명을 요구한 출연연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급변하는 국제 기술 트렌드에 대응하려면 빠르게 조직을 일신해야 하는데, 지금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출연연이 제대로 된 연구 성과를 내려면 자꾸 제약을 가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해 연구활동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