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규제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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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기업인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련을 겪고 있다.” 중견기업주간이 시작된 지난 19일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연합회를 비롯해 19개 산업 유관 협·단체가 공동 개최한 산업발전포럼에서 나온 말이다. 강 회장은 “기업인들이 규제에 울고 있다. 표만 생각하는 정치 집단이 없어져야 한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중견기업들의 잔치가 시작되는 날 주인장 겪인 강 회장이 오죽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산업계와 기업인들이 느끼는 현재 상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올 상반기에 제조업 일자리가 6만3000개나 사라지는 등 산업계의 어려움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미-중 무역 분쟁과 미국의 자동차 관세 위협,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등 대외 환경도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 집단이 또 안방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을 힘들게 하는 정치 집단은 바로 국회를 지목한 것이다. 국회가 의원 입법을 통해 쏟아내는 각종 법안들이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규제라는 것이다. 실제 20대 국회의 의원 입법 현황은 놀라운 수준이다. 20대 국회의원들 법안 발의 건수는 지금까지 총 2만3048건으로 15대 국회(1951건)와 비교하면 무려 20배에 가깝다. 이 수치는 미국의 1.7배에 이르고, 일본과는 36배나 차이가 난다.

특히 규제 법안 발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대 국회의 규제 법안 발의 건수는 3773건으로 하루에 3개꼴로 규제 법안이 발의됐고, 이 가운데 1개는 통과됐다. 자동차 리콜과 관련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만 31건에 이르고, 6명의 의원은 과징금 내용만 살짝 바꿔 개별 발의하기도 했다. 중복 법안 발의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를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하는 산업계가 정작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국정감사나 상임위원회가 열리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켜야 하는 공무원들과 참고인, 증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민주주의 전당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규제 전당으로 변질됐다.

이쯤 되면 과연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뜯어봐야 한다. 산업계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의정 평가를 법안 발의 건수로만 평가하는 풍토가 규제 양산으로 이어진다고 한탄한다. 입법 수준이나 내용보다는 물량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년에 다시(?) 여의도로 보내 달라는 현직 의원들의 선거 유인물에 법안 발의 건수가 빼곡히 들어찰 것이 빤하다. 우리 지역과 나라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달라는 유권자들의 바람은 오히려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우리 삶을 옥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21대 총선에서는 법안을 많이 만든 국회의원을 낙선시키는 운동이라도 펼쳐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리 규제 개혁을 외치고 산업 현장을 돌아다닌다 해도 여의도에서 만들어지는 규제 법망은 지금도 기업들의 뒷다리를 휘감고 있다. 이제 국민들도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의원 입법 건수에 대한 냉철한 평가도 또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규제 전당으로 변질된 국회를 진정한 민주주의 전당으로 되돌려야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자.


양종석 미래산업부 데스크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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