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득권입니다. 지금보단 용이하게 대학도 다녔고, 취직도 했습니다. 소프트웨어(SW) 개발자라는 직업도 그럭저럭 살아가기에 나쁘지 않았습니다. 꼬박꼬박 월급도 나오고, 전산화라는 대명제 아래 여유를 부리며 시스템과 서비스를 개발하며 SW 산업에 종사했습니다.
SW는 기술 변화와 트렌드 속도가 빨라서 순간순간 급변하는 업종입니다. 그만큼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새로운 기술 정보도 습득 및 적응해야 하는 고충을 겪습니다. 이제 SW 업종은 혼자 밤새워 개발하는 프로그래밍보다 개발 자원을 파악·인지·공유하고, 여러 인프라를 잘 활용해 효율성 및 확장성을 높이는 안목과 실력이 중요합니다.
20년 가까이 업무포털 영역에서 전문 SW패키지 회사를 경영하며 동고동락하는 회사 후배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 정도 업력과 고객사가 있는 회사라면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더욱더 전문성 및 자부심과 함께 밝은 모습으로 일해야 하는데 거의 매일 여기저기 지친 모습,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기도 합니다. '이 업종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솔직히 SW 영역에서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됩니다. 직원 개인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자신감도 있고 일도 잘합니다. 문제는 꼭 돈벌이 차원을 떠나 일할 때 힘든 것에 비례해 자부심과 보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나라 영역별 선배들(즉 우리 기득권)은 그동안 수월하게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 자녀와 후배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면서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둘 수 있고 자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첫 번째는 그동안 관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과감하고 헌신적인 판단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기득권 '밥통' 유지에 관련된 규제 철폐(우버·에어비앤비·타다 관련)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SW진흥법 개정에 대한 선택과 집중입니다.
현재 국회에 묶여 있는 소프트웨어진흥법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요구조건(RFP) 명확화' '과업변경 시 제값 주기' '지식재산권(개발결과물) 공동 소유' '원격지 개발 활성화(상주 금지)' '상용 SW 활성화(정부의 SW 무상 배포 금지)' 등입니다.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해 국내 SW 시장이 선순환 생태계로 자리 잡혀 가기까지는 엄청난 저항과 시간이 예상됩니다. SW는 우리나라가 잘할 수 있는 분야임에도 내년마저 흘려 보내면 더 이상은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SW진흥법개정안 취지와 철학은 좋습니다. 바로 일단 정부부터 모범을 보이고 민간 시장에도 적용돼 선순환 생태계를 만든다면 글로벌 SW 강국이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입니다. 주52시간 근무제처럼 '개발자 상주 금지'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자리 잡도록 나서 주길 바랍니다.
'변화는 기존 관습을 깨뜨리지 않으면 절대로 시작될 수 없다'는 신념으로 이번 SW진흥법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와 함께 후배를 위해 SW업계 종사자 및 정부·국회 관계자들이 '내 몸을 찌르는 심정'으로 과감한 실행에 발걸음을 내디뎌 주길 부탁합니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이사 khhkhh@kcub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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