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전기차·ESS 배터리 이대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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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사고가 국내에서 또다시 발생했다. 2017년 8월 이후 알려진 ESS 화재 사고만 25건에 이른다. 더욱이 이번 사고는 그동안 특정 업체 한 곳의 제품에만 해당된 배터리시스템 문제가 다른 경쟁 업체 제품에서 제기된 첫 사례다. 업계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전기자동차도 최근 한 달 새 화재사고가 세 차례 발생했다. 차량 충전이 완료된 상태에서 충전케이블이 연결된 채 화재가 발생했고, 배터리시스템은 흔적 없이 불에 탔다.

이들 ESS와 전기차 사고는 공통 패턴을 보인다. 일부 시공 불량이나 작업자 부주의 등을 제외하고 전기차를 포함한 모든 사고는 충전 완료 상태가 지속되다가 2~3시간이 지나 화재로 이어졌다. 배터리가 완전 충전 상태를 반복하다 내부에서 발생한 열을 견디지 못하고 불이 난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배터리 충전잔량(SOC)을 90% 이상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SOC를 90% 이상으로 설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화재 사고가 극에 달한 지난 5~6월 당시 배터리 업체가 SOC를 70%로 낮춰 사용할 것을 권고했을 땐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 배터리가 받는 스트레스를 90% 이상에서 70%로 낮췄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안정된 충·방전이 가능했다.

전기차나 ESS 모두 아직까지 화재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공통점만으로도 배터리셀·팩을 포함해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등 배터리시스템 전반의 문제일 가능성이 짙다.

이들 화재 사고로 세계 속의 한국 배터리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ESS 발주 물량은 사실상 모두 중단된 상태다. 정부가 업계 전문가로 꾸린 민관조사위원회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배터리를 대용량화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병렬 구조가 문제라고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고 타국에서 생산된 특정 물량에만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분명한 건 당장 바로잡지 않으면 이 같은 사고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짙다.

원인을 밝히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배터리에 한 번 불이 붙으면 공기를 완전 차단하지 않고는 화재 진압이 어려워 정확한 조사에 한계가 있다. 이에 정부는 당분간 SOC를 70%로 낮추고, 배터리 업체들이 근본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물론 SOC를 낮추는 건 임시방편이다. SOC를 줄이면 그만큼 배터리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손해다. 그러나 나빠진 국내 배터리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원인 규명과 함께 사고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전에 없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배터리 업체는 당장 문제를 피하기보다 배터리 소재부터 셀 설계, 양산 기술까지 아예 밑바닥부터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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