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를 삼켜버렸다. 블랙홀이 따로 없다. 정치·경제·사회·문화까지 각종 현안을 한방에 덮어버렸다. 정치권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조국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조국 후보자가 펀드를 기부하겠다는 입장을 내고 한 발 물러났지만 분위기는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 않다. 이미 조국 후보자를 앞세워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여야 정치투쟁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조정과 타협은 더 이상 없어 보인다. 문제는 자연스럽게 개점 휴업한 '국회'다.
국회가 왜 필요한가. 초등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지극히 상식 수준 이야기다. 먼저 국민에게 필요한 법을 만든다. 둘째는 행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는지 감시한다. 국정감사를 들 수 있다. 셋째는 예산 집행이다. 나랏돈을 검토하고 제대로 쓰는지 따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정책 결정을 동의하거나 승인해 주어야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가 예산과 법안 처리다. 국회를 '입법부'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20대 국회로 돌아보자. 벌써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흘러나온다. 국회 사무처 통계에 따르면 올해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8월24일 기준으로 784건이다. 부끄러운 숫자다. 20대 국회는 총선이 있었던 2016년(4~12월) 720건에 이어 2017년에 2121건, 2018년에 2723건을 처리했다. 사실상 8월 임시국회가 끝났다고 봤을 때 회기가 짧았던 총선 첫 해 법안 처리건수와 비슷하다. 20대 전체로는 어떨까. 20대에 제출된 전체 법안은 총 2만1400건이다. 올해 포함해 지금까지 본회의에서 6348건을 처리했으니 전체의 30% 수준이다. 17대 국회 53.31%, 18대 49.05%, 19대 46.52%와 확연히 비교된다.
법안건수뿐 아니라 내용도 기대 이하다. 정치 성향과 전혀 무관한 '데이터경제 3법'은 산업계 숙원이자 우리나라 데이터 경쟁력, 혁신성장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직 법사위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개인정보보호법(행안위), 정보통신망법(과방위), 신용정보법(정무위) 모두 상임위 법안 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소위를 거쳐 상임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까지 첩첩산중이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원 대부분이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오리무중이다. 과연 법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지 궁금하다. 오죽하면 행안부 전자정부국장은 국회에서 농성이라도 벌여야 할 분위기라고 하소연한다.
시간이 아직 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20대 국회 회기는 2016년 5월 30일 시작해 2020년 5월 29일 끝난다. 9개월 남았다. 따져 보자. 8월은 지났고 9월은 정기국회다. 당장 장관 청문회에 모든 관심이 쏠릴 것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당은 장외투쟁까지 선언했다. 정상적인 법안 처리가 불가능하다. 9월 말부터 10월까지는 국정감사다. 11월은 어떤가. 예산정국이다. 예산 이외에 모든 안건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12월에 일괄 처리한다는 기대가 있지만 희망사항일 수 있다. 확신할 수 없다. 그러면 2020년이다. 사실상 총선 모드다. 모두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을 시기다. 결과는 20대 제출 법안 모두, 자동 폐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다.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만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역할을 안 했어도 당선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국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투표하는 순간만큼은 가장 현명하고 냉정하다. 일 안하는 국회의원을 곱게 볼 리 없다.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심각하게 반문해 봐야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답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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