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경축사를 전했다. 올해는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일 갈등이 고조된 시기인 만큼 한 마디, 한 구절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이번 대통령 경축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광복 후 74년 동안 달성한 경제에 대한 평가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세계 6대 제조 강국이자 수출 강국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당한 경제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경공업·중화학공업·정보통신업을 차례로 육성했고, 정보기술(IT) 세계 강국이자 5세대(5G) 이동통신 같은 세계 기술표준을 선도하는 국가가 됐다고 풀어 나갔다.
이에 덧붙여 문대통령은 지금 한-일 경제 갈등의 전초전을 치르고 있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서 '흔들 수 없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결의도 빠뜨리지 않았다. 오늘날의 한-일 갈등을 어떻게 보든 궁극으로는 우리 경제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토대를 공고히 다져야 한다는 점에서 가야 할 길임에는 분명하다. 단지 이번 경축사에 언급된 우리 경제의 성공담을 회고해 볼 때 그동안 미뤄 둔 숙제 한 가지를 상기할 때가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문 대통령도 언급한 것처럼 우리 경제 발전은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우리나라 같은 경제 발전을, 그것도 그토록 바닥에서 일궈 낸 사례는 세계 역사를 통틀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물에 따르면 1960년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은 78달러로 당시 170여개국 가운데 끝에서 여섯 번째였다고 한다. 우리 경제 발전에 다른 개발도상국이 그토록 지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지금 모습만큼이나 우리가 어디서 시작했는지에서 나오는 경외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도 우리 경제 발전의 경험을 알고 싶어 하는 수많은 개도국 교육생들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교육 과정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 우리가 우리의 개발 경험에 대해 생각만큼 보여 줄 것이 그리 많지가 않다.
그 첫 번째 어려움은 당시의 기록물이 체계를 갖춰 정리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앞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다시 정보통신업으로 이어지는 우리 발전 과정의 가장 말미에 있는 정보통신 산업에 대해서조차 당시 사료를 보면 일일이 이곳저곳을 뒤져야 하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 어려움은 과거 연구 결과들이 기억과 경험한 바를 정리한 정도라는 점이다. 당시 경제 상황, 산업 여건, 정책 선택의 배경을 종합 고찰하기보다 많은 경우 증언과 기억을 정리한 정도다.
세 번째는 우리가 사는 이 시점에 관한 것이다. 이날 경축사의 본질은 광복을 일군 많은 애국지사들에 바치는 헌정사라는 점에 있는 것 아닐까 한다. 만일 우리가 2024년에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돌파하고 세계 경제 6위의 국가로 성장하더라도 그날 광복절을 맞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이들 독립 선열에게 이러한 우리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는 아쉬움이 통회 형태로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상 '동아시아의 기적'도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있다. 이제 이 기억을 기록으로 남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단지 우리 자신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기적이 자기 자신에게도 가능하다는 증거를 찾아 우리를 찾아올 개도국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기록을 모으고 정리해 나가면 한다. 그리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데 시금석으로 삼으면 어떨까 한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단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