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되기 어렵네요.” 200만원이 넘는 인터넷 강의 수강료에 맥이 빠진 공무원시험 준비생의 한숨에 땅이 꺼진다. 5년 전 명문대생의 자부심이 거듭된 시험 실패로 피폐해진 것 때문에 왜 이 길로 들어섰는지 후회되지만 취업난이 극에 달한 지금 포기하면 딱히 할 일도 없다.
왕권 강화와 권력 세습 억제를 위해 958년 고려 광종이 도입한 과거제도가 오늘의 공무원시험에 이르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는 천민을 제외한 모든 국민에게 개방되고 능력 위주의 선발제도로 발전되기도 했지만 계급사회가 완전히 사라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필요한 제도인지는 불명확하다. 60만명에 가까운 청년들로 하여금 고시원에 둥지를 틀게 만든 공무원시험은 재고가 필요하다. 장점보다 단점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왕권 강화와 권력 세습이 사라진 지금 정부가 공무원을 일률 채용해서 각 부처에 배분하는 방식은 효율성이 전혀 없다. 특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지능정보사회를 맞아 시험에 능한 인재가 관료로 적합한지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연수원 성적으로 결정되는 부처 배치도 부처 간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과거시험 실패로 인한 패배 의식과 시간 소모가 사회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시험에 매달려 습득한 현실과 괴리된 지식도 전문가를 요구하는 산업 기여도가 낮다. 10년 이상을 과거시험에 매달리는 폐단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다. 사회가 함께 고민할 일이다.
과거시험 합격증이 쓸모없는 우월감과 보직 순환의 당위성을 제공한다. 전문성보다 보편화된 시험 점수에 근거한 인재이기 때문이다. 또 공무원이라는 폐쇄된 조직을 만들기도 한다. 민간과 공공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 소신껏 일하라는 헌법 7조의 신분 보장이 무색할 정도로 밀리지 않는 월급과 정년 보장이 공무원이 되려는 이유로 전락, 정부 경쟁력이 약화돼 가고 있는 것도 과거시험의 무의미를 대변한다.
투명성과 객관성을 빌미로 공무원시험을 고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신분 상승 방법으로 내세우기에도 설득력이 없다. 최근에는 대기업도 신입사원 공채로 직원을 배분하는 형태를 지양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필요에 따라 직원을 면접과 전문성을 고려해 직원을 선발하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시험으로 직원을 선발해 나눠 주는 우리 제도와는 완연히 다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 채용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공무원시험을 전면 폐지하고 각 기관이 필요한 인재를 수시로 채용해야 한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개방직 채용을 확대하는 한편 시험에 능한 인재, 과외 수업이 가능한 부유층, 족집게 강사를 만나는 행운보다는 적임자를 선발하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공무원시험 폐지의 부작용도 예상된다. 60만명이 넘는 공무원시험 수험생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행 제도를 10년 정도 병행할 수 있다. 행정의 복잡화와 비용 증가를 막기 위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활용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해결할 수 있는 부작용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다.
공무원 채용은 단순히 수험생과 정부에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찾는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가 경쟁력이 향상돼야 한다. 고시라는 시험문제 풀이를 통해 인재를 뽑아 각 부처에 나눠 주는 방식의 구태의연한 방식은 답이 아니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동일한 방식을 고집하려 하는지 안타깝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