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디지털헬스 기업 페어테라퓨틱스는 만성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는 성인에게 처방하는 디지털신약(Digital Medicine) 'Somryst' 판매 승인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청했다. 회사는 앞서 약물중독 치료에 관한 디지털신약 2건을 허가 받아 벌써 세 번째 신청이다. 의료용 소프트웨어(SW)프로그램에 기반을 둔 디지털신약은 임상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돼 질병 치료에 직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디지털헬스 서비스를 뜻한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유럽 등 의료선진국에서는 전통 의약품과 같은 처방 신약으로서 디지털치료 시대를 활짝 열어가고 있다.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세계는 디지털신약 속도전을 펼치며 간극을 점점 벌려나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21세기 치료법'을 제정해 의료용 소프트웨어(SaMD: Software as a Medical Device)와 같은 디지털신약 승인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사전승인 파일럿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미국 FDA 산하에는 디지털헬스 전담 부서도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한 디지털신약은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의료기기 제품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연동하고, 전통 헬스케어서비스를 더해 자가 건강관리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생성하는 정량화된 건강데이터(PGHD)와 진료데이터 등 다양한 건강데이터가 개인을 중심으로 연결되고, AI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돼 질병 발생 여부를 진단하거나 재발을 예측하고, 환자 상태에 따라 기존 의약품이 아닌 서비스를 제공해 불충분했던 예후관리 영역까지 의료서비스를 확장시킨다.
각국이 앞 다퉈 디지털신약 육성에 공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고령화에 있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상승이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줘 건강보장성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령화 속도를 보이는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사고율을 떨어뜨려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신약의 적극 도입이 요구된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65세 이상 어르신의 진료비가 40%를 넘어섰고, 오는 2025년에는 이 수치가 50%에 육박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1분기에만 약 4000억원의 건강보험 적자가 났다,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경우 보험료나 국고지원금 인상 등의 조치가 없으면 내년에 적립금이 고갈될 것이란 잿빛 전망이 나온다.
디지털 신약은 치료효율을 높여 의료 질을 높이고,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할 기대주로 꼽힌다. 특히 암 생존자 증가가 의료비 지출 증가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디지털신약을 통한 지속적 예후관리는 암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노동력 상실을 막는 등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로 필요성이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정부도 수년 간 디지털헬스케어와 관련된 다양한 국책과제를 발주하며 디지털신약 육성에 무게를 싣고 있으며, 디지털신약 인·허가를 위한 디지털헬스 전담부서 신설을 추진 중이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민간보험을 위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디지털헬스의 적극 도입을 권장하고 있다. 이 역시 디지털헬스 서비스를 통해 보험가입자 건강을 증진시켜 보험 사고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조치다. 공보험이 디지털헬스를 수용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사보험 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의료비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은 이미 공보험인 메디케어(노인 의료보험)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를 통해 디지털신약에 보험을 적용하고, 일본도 초고령사회 타개책으로 디지털신약 제도권 도입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제도적으로 디지털신약을 도입하면 보험자인 정부는 국민건강관리를 위한 선택지를 넓힐 수 있을뿐더러 지속적 예후관리로 환자 재입원과 반복적 치료 개입을 예방해 국가 의료비 투입보다 산출이 더 큰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송승재 라이프시맨틱스 대표이사 sj.song@lifesemantic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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