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7개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에 대한 의견 수렴을 24일 마감한다. 우리 정부는 일본 경제산업성에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을 전달하고, 세계무역기구(WTO)와 미국에서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여론전을 펼쳤지만 일본은 꿈적도 않는 모습이다. 양국 정부는 대결구도에서 한발도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확대 및 장기화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23일 외신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2일 NHK와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유에 대해 “바세나르체제 등 국제 루트 하에서 안보를 목적으로 적절한 실시라는 관점에서 운용을 재검토한 것으로, 대항조치가 아니다”라는 원론적 입장을 거듭 주장했다. 또 “한일 청구권 협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한국이 일방적으로 행해 국교 정상화의 기초가 된 국제조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이 일본의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조건을 수락하지 않으면 수출 우대 대상국에서 배제하는 법령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단 일본 수출규제 조치가 부당함을 알리는 데 적극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무역법 개정사항인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건에 대한 의견서한을 23일 경제산업성에 이메일로 제출했다. 서한에는 지금까지 아베 총리나 일본이 주장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유로 꼽은 사안에 대해 강한 반박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한일 전략물자 관련 양국 국장급 회담을 23일 이전에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일본 측은 답을 회피했다. 지난 22일엔 WTO 일반이사회에 김승호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을 파견한 데 이어 23일에는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파견했다. 각각 일본 수출규제 조치가 국제법에 위배된다는 점과 미국 등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밝힌다.
외교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당장 수출규제를 철회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일본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자국 수출관리 일환으로 거듭 주장하는 만큼 국제관계를 고려해도 철회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만약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현실화되면 일본은 24일 수출무역관리령 시행령 개정에 관한 의견수렴을 마치고 이후 각의 공포 등 일본 내부 의사결정 절차가 이뤄진다. 각의 결정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 이뤄지면 공포 후 21일 후에 시행된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한국은 모든 전략물자에 대해 개별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첨단소재·전자·통신·센서 등 약 1100여개 품목이 영향권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민간용이 261개, 비민간용 851개이다.
다만 화이트리스트 규제가 시작된다고 해도 일본이 민간용 품목 전체까지 수출 금지할지는 미지수다.
한 정부 관계자는 “기업이나 경제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자금의 조달이나 자본재의 조달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것”이라며 “일본의 조치는 어떤 물품에 대해 어떤 규제조치가 이뤄질지 알 수 없어 기업이나 경제에 미치는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밖으로는 일본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면서도 WTO 제소와 안보 연계 등으로 압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내부적으로는 수출규제 압박을 피하기 위한 핵심 소재 부품 국산화 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이경민 산업정책(세종)전문 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