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은 열심히 잘 싸웠습니다. 연장전 결과와 상관없이 자랑스럽습니다.”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8강전 경기가 연장전으로 들어가기 직전 중계 아나운서의 말이었다. 세네갈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는 태극전사들의 열정과 진지함이 승패보다 훨씬 가치 있는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연장까지 비긴 후 3-2 승부차기 승리로 36년 만에 4강 진출을 달성하고 우승까지 넘보는 한국 축구 청소년 대표팀의 비결이 궁금하다.
4강 신화의 원동력은 영웅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 조직력이다. 18세 막내지만 걸출한 실력의 이강인을 중심으로 뭉친 선수들과 형들의 도움으로 자신이 잘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하는 작은 영웅의 모습이 힘이다. 몸을 날려 슈퍼세이브를 만들어 내는 골키퍼 이광연과 응원하는 동료들이 세네갈전의 영웅이다.
실력자가 조금만 튀면 소수의 선동자가 흠잡고 끌어내리는 통에 '영웅 키우기'에 실패한 우리의 경험과는 사뭇 다르다. 융합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분야와의 협력에 인색하고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정치·산업·경제 분야에서 영웅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웅인 척 나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선동가가 난무할 뿐 진정한 영웅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한 영웅을 만들고, 키우고, 뭉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지난 6~8일 한양대 8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인 '라 트라비아타' 야외 오페라 공연이 빗속에서 강행됐다. 음대 교수들이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를 흠뻑 맞은 채로 물에 젖은 무대 위를 누비며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아픈 사랑을 노래한다. 피아노 두 대가 오케스트라를 대신해도, 바닥에 엎드려져서도 개의치 않는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표현하는 아름다움으로 우비 속에 갇힌 채 함께 즐거워한다. 그들의 열정이 불러온 감동이다.
4차 산업혁명의 생명줄인 연구개발(R&D)에 비상등이 켜졌다. '불 꺼지지 않는 연구실'을 지향하는 연구소와 대학 연구실에 근무시간 제한 역풍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와 실업급여 정책이 본래 목적보다는 '열정 상실'이라는 기형아를 낳고 있어 우려된다.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한 국가를 획일화된 제도로 묶으려는 시도는 미래를 갉아먹는 독이 될 수 있다. 정책 목표 극대화와 부작용 최소화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특성에 적합한 다양한 정책 시행이 시급하다.
자유로운 이직을 위한 실업급여 제도와 출산장려 정책의 일환인 육아휴직이 일부 수혜자의 왜곡된 윤리의식으로 엇나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해고라며 거짓 문서를 꾸미고, 직장을 월급이 전부인 장소로 전락시키면 국가 발전의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한 직업도 필요하고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도 즐거운 직업도 필요하다.
U-20 월드컵 신화를 쓴 것은 열정이다. 목표를 향해 혹독하고 힘든 훈련을 이겨낸 결과가 4강 진출로 나타났다. 훈련이 지나치다는 이유로 자신을 던지는 선수들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사람에게 축구 경기에 뛸 기회를 줘야 하지만 동일한 시간 이하로 훈련하도록 일괄 지정할 필요는 없다. 단순한 규제 하나로 그냥 축구만 하는 변방 국가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고 평가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후손이 감당해야 한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