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준의 어퍼컷] 대통령의 '초심'과 장관의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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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 청문회가 끝났다. 후보자 속살이 낱낱이 까발려졌다. 이미 알려진 경력과 감추고 싶은 과거 발언은 애교 수준이었다. 듣기 불편한 낯 뜨거운 이야기도 가감 없이 나왔다. 독한 각오로 청문회에 임했지만 그래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에게 주는 파장이 상당하다. 모욕, 치욕, 굴욕까지 감내하면서 청문회에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왕적 권력을 가졌다는 대통령이 요청하는 강권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명예나 자리와 같은 개인 욕심 아니면 시쳇말로 '가문의 영광'과 같은 대의 때문일 수 있다.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저마다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기 장관하면 떠오르는 연관 키워드는 '존재감'이었다. 장관과 부처 명패만 보인다는 비판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수많은 사회 현안이 불거졌지만 정작 있어야 할 자리에 장관은 보이지 않았다. 장관이 가진 책임과 권한에 비해 위상과 역할은 미미했다. '장관 실종'이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혁신성장, 최저임금, 부동산 양극화, 카풀, 일자리, 미세먼지 등 메가톤급 이슈가 많았지만 해법은커녕 속 시원한 장관 대답 한 번 듣지 못했다.

신산업으로 꼽히는 카풀은 사회적 대타협 운운했지만 깊은 생채기만 남았다. 국토교통부는 뒷짐만 지다가 허송세월했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가 과연 담당 부처인지 헷갈릴 정도로 존재감이 바닥이었다. 문재인 정부 아이콘으로 불리는 중소벤처기업부는 내부 갈등과 리더십으로 임기 전부를 허비했다. 최저임금, 52시간제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장관은 엉뚱한 곳만 바라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재난 수준으로 격상된 미세먼지 사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담당인 환경부는 물론 모든 부처가 넋을 놓았다가 대통령 한마디에 호들갑을 떨었다. 이마저도 잠시, 여전히 대책은 감감무소식이다. 과학과 정보통신(ICT) 홀대에 귀 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 문제 핵심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교육부도 상황은 비슷하다. “청와대와 코드 맞춘 것 외에 뭘 했느냐”는 비난만 거셌다.

일각에서는 청와대로 화살을 돌린다. 청와대 '그립(grip)'이 너무 세졌기 때문이란다. 청와대로 힘이 모이고 장악력이 커지면서 운신의 폭이 작아졌다는 설명이다. 모든 국정을 시시콜콜 관장하는 청와대의 '만기친람'이 근본 문제라는 것이다. 설령 맞다 해도 '누워서 침 뱉기'다. 청와대와 정부는 한 몸이다. 대통령이 큰 정책 줄기를 잡으면 정부가 실행하는 게 상식이다. 국정 운영에서는 운명공동체다. 청와대와 정부가 핑퐁을 해 봐야 국민 입장에서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처음 질문이다. 왜 호통과 질책은 물론 욕설에 가까운 막말까지 참으면서 장관이 되고 싶어 할까. 바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사명감' 때문이 아닐까싶다. 사명감이 아니라고 답한다면 정말 장관 자격이 없는 것이다. 사명감은 결국 '소신'에서 나온다. 철학과 가치관이 없다면 소신이 나올 리 없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초심도 소신 있는 장관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청문회를 끝낸 후보자는 속이 타들어 간다. 국토부 장관은 자진 사퇴했고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명을 철회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2기 내각도 진용을 갖추고 출발선에 설 것이다. 2기는 1기와 달라야 한다. 장관은 각 부처 총사령관이다. 사령관이 흔들리는데 휘하 장병이 한 곳을 바라볼 리 만무하다. 대통령, 장관, 공무원이 서로 딴 생각을 한다면 국정 성과는 기약할 수 없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당사자는 장관이다. 장관이 앞장서 소신을 가지고 뛰어야 한다. 장관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2기도, 1기 판박이에 불과하다.


취재총괄 부국장 bj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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