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일자리 프레임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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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정부는 청년실업 대책의 일환으로 인턴 공무원 1만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4대 보험 혜택을 제공하고, 시간외 수당도 지급했다. 그러나 이는 6개월 시한의 기본급 100만원짜리 임시직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 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급조한 정치 쇼였다. 당시에도 가짜 일자리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모든 정부, 지방자치단체 정책이 이 같은 '일자리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발표하는 모든 정책에 '몇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내용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명기됐다. 이런 현상은 지자체 산하기관에 이르기까지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모든 기관으로 확산됐다.

일자리 프레임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정부와 지자체의 거의 모든 정책에 '일자리'가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실질적인 산업 생태계나 미래 지향적인 투자보다는 당장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산하기관에 눈에 보이는 일자리 창출 성과를 내놓으라는 압박도 거세졌다. 급기야 정부 부처에서 말단에 있는 산하기관까지 연간 일자리 창출 목표를 구체적인 숫자로 제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심지어 국가 백년대계를 고민해야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도 일자리를 창출하라는 요구가 내려왔다. 출연연의 연구 방향도 기술사업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단기 과제 중심으로 짜였다.

그러는 사이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거시 정책은 점점 사라져 갔다. 출연연이 답 없는 정규직화 문제에 발목을 잡혀서 쩔쩔매는 것도 맹목적인 일자리 프레임에 갇힌 융통성 없는 정책이 빚어낸 현상이다. 사실 일자리는 정부가 나서서 마련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마련하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서 노동 시장에도 자유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도록 지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정부가 직접 마련해서 제공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매우 제한돼 있다.

정부 관계자도 이미 알고 있을 법한 상식 수준의 얘기다. 그럼에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팍팍한 삶을 외면하는 반서민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일자리 정책은 곪아 터진 환부에 인공 살을 덧대는 우매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환부까지 피가 돌도록 핏줄을 터 주지 않고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체질까지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야 피가 통해도 약효가 먹힌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붓고는 있지만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다. 최근까지도 새로 생긴 일자리는 공표되지만 그 사이에 사라진 일자리는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자리 정책은 과거 정권이 만들어 낸 포퓰리즘 정책이다. 그럼에도 지금 정권까지 프레임에 갇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이제는 낮 간지러운 일자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악화된 우리 경제를 근본부터 치유하는데 힘써야 한다. 일자리는 그래야 증가한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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