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서도 정부 암호화폐공개(ICO) 가이드라인 기대를 많이 접었습니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는 허탈감만 팽배합니다.”
최근 만난 블록체인 업체 관계자는 한숨만 쉬었다. 해외에서 ICO를 진행하다가 포기한 곳도 많다는 소식을 전했다. 올해 초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해외 유명인사 발길도 끊겼다.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할 ICO 프로젝트도 모습을 감췄다.
한 번 멸종된 '참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1958년 중국 마오쩌둥이 참새에게 내린 사형 선고가 60년 후 대한민국에서 부활했다. ICO는 한순간 '해로운 새'가 됐다. 금융 당국은 ICO로 인한 피해 사례를 발표했다. ICO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마진 거래, 파생상품에도 규제가 적용되자 몇몇 업체는 사업을 접었다. 이렇게 참새가 죽어간 곳에 다단계·공동 ICO 사기 등 해충이 들끓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분리할 수 있다'는 정부 방침이 낳은 결과다.
새해에 6개 정부 부처에서 프라이빗 블록체인 시범 사업을 추진한다. 스마트 계약과 분산원장 기능에만 주목했을 뿐 '탈중앙화' 이슈는 외면했다. 중앙 서버 대신 참여자(노드)에게 데이터를 분산 저장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것이 암호화폐란 사실은 여전히 간과했다. 한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51% 공격'에 취약하단 사실도 고려하지 않았다.
국회 움직임도 더뎠다. 국정감사 당시 'ICO 허용'을 주요 의제로 내걸었지만 결과물은 없었다. 이달 중에 ICO 입법 공청회를 열겠다는 목표만 밝혔을 뿐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자기 갈 길만 갔다. 금융위원회에서 ICO 금지 입장을 견지하는 데도 당장 ICO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처럼 바람만 불어넣었다.
상황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업계도 이런 상황에 책임이 있다. 초당거래처리속도(TPS), 샤딩 등 기술을 알리는 데만 매몰되지 말고 하루 빨리 적용 실례를 선보여야 한다. 일단 ICO 금지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을 전제로 해서 내년 계획도 짜야 한다.
정부도 변동된 상황에 맞춰 관련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 '암호화폐는 투기'라는 프레임에 갇혀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일관하거나 방치한다면 참새의 비극을 피할 수 없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