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이하 자문회의) 심의 없이 최종 편성되는 현 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다. 자문회의와 기획재정부의 정부 예산안 편성 시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R&D 예산 편성 전문성이 떨어지고, 기재부가 자문회의를 넘어선 권한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자문회의 심의 기간 연장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25일 국회에 따르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최근 내년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자문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과학기술 R&D 신규 사업을 예산안에 편성하는 것은 과학기술기본법 취지에 어긋난다”면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확정한 내년도 국가 R&D 예산안은 주요 R&D 16조3522억원, 일반 R&D 4조475억원을 합한 20조3997억원이다. 이 가운데 36개 사업 1974억원이 자문회의 심의 없이 기재부 결정에 따라 정부 예산안에 담겼다. 자문회의는 R&D 예산배분·정책심의를 담당하는 유일 총괄기구다. 과기 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R&D 예산을 심의한다.
그럼에도 국가 R&D 사업 예산 일부가 자문회의 심의를 받지 못한 것은 국가 R&D 심의·의결 시점과 기재부의 정부 예산안 확정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 R&D 법정 의결 기한은 매년 6월 말까지다. 여기서 확정한 주요 R&D 예산안은 기재부로 넘어간다. 이후 기재부가 세입·세출을 따져 8월까지 정부 예산안을 최종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당초 예산에 포함하지 못한 사업이 추가 반영 또는 제외된다.
국회 예결위는 국가 R&D 사업 예산 편성 전문성 제고를 위해 자문회의 심의 절차를 둔 당초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도 윤상직(자유한국당)·신용현(바른미래당) 의원 중심으로 기재부가 자문회의를 넘어선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스 매치를 해소하기 위해선 자문회의 R&D 예산 심의 기간 연장이 필요하지만 법 개정, 부처 이해관계 조정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자문회의 R&D 예산 심의 의결 이후 기재부의 정부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도 전문위원 검토가 이뤄진다”면서도 “자문회의 심의 기간을 6월 이후로 연장하면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법 개정 및 타 부처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과기정통부와 입장이 갈렸다. 자문회의 심의 기간을 연장하면 기재부가 다른 요소까지 종합 고려, 심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R&D 예산 증액은 사전 심의 예외 조항에 근거했다”면서 “자문회의 전문 심사도 중요하지만 기재부로선 다른 예산과 형평성을 맞춰 편성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과기정통부 입장을 반영, R&D 예산을 많이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심의 절차를 경직적으로 운영하면 꼭 필요한 R&D 예산을 충분히 늘리기 어려운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동취재 유선일기자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