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유럽연합(EU)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다. 2017년 우리나라 총상품 무역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컸다. 대EU 수출은 중국과 미국에 이은 세 번째, EU로부터의 수입 규모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EU는 경제 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교통, 에너지, 기술 개발 등에 대한 투자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동차와 제조물 안전, 화학물질 신규제정책(REACH), 에너지 효율 및 환경 규제(RoHS, LVD, RED, EMCD, WEEE 등) 사회 책임, 정보보호(GDPR) 등 다양한 규제 조치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는 곳도 EU다.
환경과 안전 같은 사회 가치를 우선시하는 정책은 본받아야 마땅하지만 유럽의 각종 규제 정책은 무역 상대국에 새로운 무역 기술 장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전통 무역장벽인 관세가 대거 인하되거나 철폐되는 상황에서 무역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기술 규제가 새로운 무역 정책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세계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후 무역기술장벽위원회에 제기된 특정무역현안(STCs) 562건의 21%인 119건이 EU의 기술 규제에 관한 것이다. 또 무역기술장벽(TBT)으로 인해 WTO 분쟁 해결 기구에 제소된 분쟁 사례 54건의 37%인 20건이 EU 규제 조치로 인한 것이다.
국제 표준화와 기술 규제 도입을 선도하는 EU의 잠재된 무역 기술 장벽에 효과 높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
첫째 정부와 기업, 산업 및 업종별 협의체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는 WTO와 한·EU FTA의 전기전자 규제대화체를 포함한 양자 간 상호 조정 기능 등을 활용해 EU의 기술규제 제·개정 동향과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분석, 우리 업계에 제공해야 한다. 질의와 문제 제기를 통한 적극 대응 노력에도 경주해야 한다. 기업과 업계는 현지에서 파악한 기술 규제 관련 정보를 정부에 알리고, 직면한 무역 기술 장벽에 대해서는 정부와 협력해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EU와의 양자 간 채널뿐만 아니라 주요 이해 관계국과 공동 대응이 요구된다. 유럽이 선도하는 표준화 및 기술 규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와 이해를 함께하는 제3국과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한다. EU는 다양한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해 시기가 앞서거나 과도한 규제 조치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다수 회원국과 경제 규모가 거대한 유럽의 무역 기술 장벽을 극복하려면 여러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야 한다.
셋째 정당한 기술 규제는 유럽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기 때문에 신속하게 기술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역 기술 장벽 대응을 총괄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TBT 중앙사무국과 TBT 통합정보 포털(KNOW TBT) 등 지원 기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또 정부는 EU가 제정한 규제 조치 배경을 철저히 분석해서 국내 규제 조치도 제정하거나 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내 규제를 도입할 때는 절차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이해관계자 참여를 강화하며, 규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와 재편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한 경우 국내 규제에 대해서도 포괄 및 전향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
유럽이 선도하는 무역 기술 장벽에 체계를 갖춰 유연하게 대응함으로써 거대 경제권 및 글로벌 시장 전반에 대한 접근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우리의 관련 제도도 좀 더 선진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남상열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통상·남북협력센터장 synam@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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