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환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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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 문재인 정부 규제 혁신 5법 가운데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지역특구법 개정법률안이 국회 통과와 함께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드디어 벤처업계 염원인 규제 혁파 물꼬가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통해 트인 것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놀이터 모래밭처럼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 주는 제도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산업의 새싹을 기존 규제 법령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규제 샌드박스는 영국이 2014년부터 '글로벌 핀테크 캐피털' 선언과 함께 런던을 핀테크 분야 육성 지역으로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영국의 성공을 확인한 많은 선진국이 신산업 육성을 위해 정책 과제 가운데 규제 개선을 우선으로 두고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며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번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통해 그동안 정부의 규제 혁신 의지가 구체화됐고, 이제 많은 창업 벤처기업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사업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매우 고무되는 일이다. 선진국과 경쟁국들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동안 적어도 정부가 인증한 벤처기업에서만이라도 규제 샌드박스를 조속히 도입해 달라는 벤처기업협회 요청이 법령으로 반영된 것에 대해 벤처업계는 적극 환영한다.

싱가포르, 아부다비, 홍콩, 호주, 말레이시아, 대만 등은 핀테크에 초점을 둔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유럽은행연맹(EBF)을 통해 EU 전체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일본은 규제 샌드박스를 국가 전략에 반영한 첫 국가로, 지금까지 글로벌 기술 혁신에서 뒤처진 원인을 현행 규제 정책에서 찾고 규제 샌드박스를 4차 산업혁명 실현을 위한 핵심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15년부터 '낡은 잣대로 신산업을 규제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리커창 총리의 공유경제 및 신산업에 대한 강력한 육성 의지 아래 관련 기업의 초고속 성장을 이끌고 있음은 물론 이들 기업의 글로벌 시장 석권 꿈을 꾸고 있다.

이렇듯 경쟁국들은 신산업 육성이라는 명확한 방향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화한 정책 수단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승차 및 숙박 공유, 핀테크, 원격의료,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각종 신산업이 기존 전통산업을 위한 규제에 가로막히거나 사회 합의 지체로 싹을 틔워 보기도 전에 서비스를 변경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져 왔다.

더욱이 최근에는 성공 안착해서 성장하고 있는 배달앱 등 온·오프라인(O2O) 서비스마저도 일부 전통 사업자와 이해관계가 충돌, 국회의 신규 규제 움직임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규제 혁파를 주창했다. 이명박(MB) 정부의 '대불산업공단 전봇대',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등 귀에 익은 문구가 있지만 성과 면에서는 늘 용두사미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규제는 더욱 촘촘하게 기업을 옥죄어 왔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2016년 8년 동안 신설·강화된 규제는 9715건이고, 반면에 규제 개선 성과로 줄어든 규제는 837건이었다.

이번 '규제 샌드박스' 도입은 신산업 육성을 가로막는 규제 혁파 첫걸음이자 마지막 도전이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규제 문제 본질은 1, 2차 산업혁명 수준에 머물러 있는 법령 체계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 신산업과 전통산업 간 충돌을 조정하는 건강한 '공론장'의 부재다. 무엇보다 해묵은 규제를 걷어 내는 일이 신산업 육성의 시발점이고, 이는 우리나라 미래 산업 동력의 명운을 결정하고 일자리 창출의 근본 해결책인 경쟁력 있는 기업 육성의 핵심이라는 사회 공감대 획득이 중요하다.

이것은 청와대나 행정부만의 의지, 국회 차원의 협조 정도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지금 우리 경제·사회 곳곳에서 울리고 있는 무거운 경고음을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의 높은 파고를 넘어 미래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구조 개혁에 대한 우리 사회 모두의 진지한 고민과 합의가 절실한 시점이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charles@kov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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