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증강현실(VR·AR) 기술 경쟁력이 미국과 일본에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14%, 일본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특허가치를 가늠하는 심사관 피인용수는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전자신문과 IP데이터 기술기업 광개토연구소가 최근 10년간 VR·AR 관련 미국 특허청 공개(심사 중)·등록 특허 수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2008년부터 1만1063개를 공개·등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엔비디아, IBM, 인텔 순으로 소프트웨어(SW)와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일본은 10년 동안 3036개, 한국은 같은 기간 1635개 관련 특허를 공개·등록했다. 일본은 소니 494개, 세이코 엡손 362개, 캐논 216개, 도시바 137개, 파나소닉 110개, 후지쯔 110개 등 6개 기업이 100건 이상 특허를 공개·등록했다.
한국 기업 중 100개 이상 특허를 공개·등록한 업체와 기관은 삼성전자(718개)를 비롯해 LG전자(213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143개)까지 3곳이었다.
한국 기업과 기관이 출원한 특허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심사관 피인용 수는 특허청 심사관이 후속 특허 심사 과정에서 특정한 특허를 인용한 수치다. 높을수록 해당 국가가 가진 특허 가치가 높다는 뜻이다.
한국은 VR·AR 관련 특허심사관 피인용 수는 5년 평균이 3.93건에 머물렀다. 미국은 5년 평균이 7.78건 일본은 6.65건이었다. 한국보다 전체 특허 수가 적은 독일은 5년 평균 피인용 건수가 4.73건이었다. 한국보다 더 적은 특허로 많은 인용을 기록한 것이다.
10년간 피인용 수 평균도 일본이 25.7, 미국은 23.2인데 비해 한국은 6.4였다. 한국보다 특허 수가 적은 독일은 13.9를 기록해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미국, 일본, 한국 모두 3D 이미지나 영상을 기기에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특허를 가장 많이 등록했다. 다만 MS 등 일부 기업은 혼합현실(MR), AR 등 자사 상품에 따른 특허를 다수 보유한 점이 달랐다. 보안, 네트워킹에 관련된 특허는 세 국가 모두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 경쟁력 약세는 하드웨어와 플랫폼 상용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MS, 구글 등은 VR 관련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 하드웨어, 콘텐츠 플랫폼을 자체 출시하고 있다. 반면에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이들 기업과 협력하거나 아직 상용제품을 개발 중이다.
◇ VR·AR 기술 경쟁 남은 분야 많아…중소기업 약진 기대
한국이 현재까지 VR·AR 특허경쟁력 분야에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무주공산'이 많아 가능성이 남아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VR 기반 기술에 대한 이론적 토대와 핵심 기술은 이미 1960~1970년대 정립됐다”면서 “상업적 성과에 대한 부분은 응용을 어떻게 하느냐에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김시우 ECM 특허법인 대표 변리사는 “심사관 피인용 수 만으로 특허 가치를 완벽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 “VR·AR 시장은 아직까지 널리 상용화되지 않은 시장으로 기술 개발에 따라 기존보다 더 좋은 효과를 갖는 특허가 계속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중소업체도 기술개발을 통해 높은 가치를 가지는 특허출원 등록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한국 중소기업은 콘텐츠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특허와 상용제품을 동시에 등록·출시 중이다. 스코넥엔터테인먼트는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도심형 VR테마파크 사업을 전개 중이다. 자체 콘텐츠는 물론 공간을 활용하며 움직이는 콘텐츠 구현 기술에 경쟁력을 보유했다.
최정환 스코넥엔터테인먼트 부사장은 “공간 활동 기반 VR 분야에서는 특허가 아직 많지 않다”면서 “이용자 위치 파악과 네트워크 구성은 선점되지 않은 분야로 이미 출원한 특허도 있고 미국 등 글로벌 특허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 부사장은 “VR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게임 방식이 가진 정형화된 틀을 피해야하지만 이미 등록된 특허가 크게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사용자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최적화와 창의성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서울, 부산 등에 대규모 VR테마파크와 VR영상 콘텐츠 사업을 준비 중인 이상원 원이멀스 본부장은 “유저 플레이와 UX(사용자경험) 등 솔루션 분야에서 글로벌 특허를 준비 중”이라면서 “(플랫폼과 하드웨어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대기업은 기존 특허가 부담될 수 있지만 콘텐츠 기업이 상품을 개발하는 데 제약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표> 국가별 VR·AR 관련 미국 특허 수 (자료:광개토연구소)
<표>최근 10년간 국가별 VR·AR 특허당 피인용 수 평균 <자료:광개토연구소>
<표> 주요 국가별 가상현실 산업 육성 전략 (자료:한국산업기술진흥원)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