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음향기기 라이선스 업체 돌비가 올해 국내 중소기업 대상으로 한 새 계약서에서 지난해 만료된 특허까지 끼워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돌비는 국내업체에 로열티 20배에 이르는 페널티를 강요하는 등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행위를 반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직권 조사로 사태를 파악하고 중소기업 지원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돌비는 올해 상반기 국내 중소기업 대상으로 요구한 새 계약서에서 지난해 3월 특허권이 만료된 '돌비 디지털(AC-3)' 특허를 포함했다. 돌비는 AC-3 특허를 포함한 '돌비 디지털' 계약 갱신 시 표준 특허 증빙 없이 추가 특허를 라이선스에 끼워 넣었다. 업체에 필요 없는 특허는 물론 기간까지 만료된 특허를 계약서에 포함한 셈이다. 본지 8월 8일자 2면 참조
업계 관계자는 “AC-3 특허는 지난해 3월 20일 만료된 특허로, 돌비도 2012년 미국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분기재무 기록에서 특허 만료를 명시한 바 있다”면서 “표준 특허와 관련 없는 특허를 라이선스 계약에 다수 포함했다”고 지적했다.
AC-3 특허는 돌비가 5.1 채널을 기반으로 구축한 디지털 음향 포맷이다. 방송, 홈시어터, 영화관, 비디오게임 등에서 표준 음향 포맷으로 활용되는 만큼 돌비 특허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돌비가 자사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기존 표준 필수 특허와 동일한 요율로열티를 징수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돌비의 행위는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 지위 남용 행위와 불공정 행위에 해당된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라이선스 대상 특허가 소멸한 이후 로열티 징수를 금하고 있다. 돌비가 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를 활용해 업체에 새 계약을 제시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돌비는 (업체에 새 계약을 제시하며) 기존과 동일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더 많은 특허에 대한 라이선스를 받는 것이어서 유리하다고 설명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라이선스 대상 특허가 소멸한 이후에는 로열티 징수를 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업계에 따르면 돌비는 국내 업체 감사 과정에서 통상 로열티 20배에 이르는 패널티를 요구했다. 감사 과정에서 증빙을 거치지 않고 모든 제품을 돌비 기술 사용 제품으로 결론 냈다.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 의원은 “협력사가 자체 개발한 기술도 돌비 기술을 사용하니 로열티를 내라고 한다”면서 “때로는 통상 로열티 20배를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2015년 공정위가 돌비 불공정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수준에서만 처벌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2015년 공정위가 돌비 불공정거래 행위를 처벌한 바 있지만 과징금이 아닌 시정명령만 내렸다”면서 “이마저도 일부 계약서만 바꾸면 돌비가 피할 수 있는 사안만 다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은 특허 끼워 팔기 등 행위를 당하더라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정도로 대응에 취약하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관련 사안에 대해 이미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015년 돌비 조사 때는 계약서 내용만 살폈지만 이번에는 특허 사용에 대한 수수료·위약금을 받는 부분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였다”면서 “특허는 복잡한 사안이지만 문제가 있는 부분을 추가로 세밀하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