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남북협력 모델로서 백두대간 식물 자원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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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비핵화 논의와 협력 모색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다. 돌이켜보면 한반도는 늘 갈등과 충돌, 변화의 물결 속에 자리했다. 이런 역사와 달리 한반도의 식물은 인간에게 유용한 약물을 제공하면서 수 백년, 수 천년 동안 백두대간을 따라 자랐다.

백두대간의 식물은 인간의 먹거리와 생활용품의 재료가 돼 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색조와 미를 보여 주는 관상식물로서도 가치가 크다. 최근엔 전통 의약, 약선음식 문화와 맞물려 약용식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물 연구의 핵심 자원으로 떠올랐다.

천연물 연구는 우리 생활에 필요한 의약품, 건강보조식품 등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천연물 연구개발(R&D)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물 자원의 다양성은 필수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은 국가표준식물목록 기준 4500여종이다. 수만 종의 자생식물을 보유하고 있는 생물 자원 부국에 비해서는 매우 부족하다. 우리는 생물 자원 부국과의 해외 유용식물 활용을 위한 협력 기반을 강화하고, 각 식물종의 용도와 개발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숨어 있는 자생식물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중요하다. 비무장지대(DMZ)와 백두산, 백두대간을 따라 자연 생태가 잘 보존된 산간 지역은 우리의 자생식물 자원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2500여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DMZ는 백두대간 줄기를 가로지르며 북한 식물과 남한 식물이 함께 자라고 경쟁하는 지역이다. 식물 다양성이 매우 높다. DMZ는 세밀한 식물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발견된 280여종의 희귀식물 외에도 많은 미기록 종과 희귀식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짙다.

백두산은 많은 식물과 동물이 자연의 보호 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생물 자원의 보고다. 백두산에는 1500여종의 유관속 식물과 330여종의 버섯 등 균류가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우철, 한국식물학회지, 1989; 조덕현 등 한국균학회지, 1992)

7~8월에 한정된 조사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기간에 조사한 백두산 자생식물 가운데 약 85%가 약용식물로 판명돼 그 용도와 가치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학자는 지속해서 백두산 생물 자원을 조사하고 있는 반면 국내 학자에 의한 조사 결과는 1990년대 초반까지 보고된 내용이 전부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는 더욱더 식물학자, 균학자, 농학자, 약학자 등 다학제 간 학자들을 모아 백두대간 식물 자원에 대해 체계를 갖춘 전수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백두대간의 식물 자원은 남북이 함께 손을 잡아 연구할 때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 협력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북한의 민간 의약 정보를 기반으로 한 유용 식물 조사와 우리나라의 발전된 화학 및 생물학 기술을 활용한 효능 검증 및 실용화 기술 협력을 함께 진행하면 효과가 있다. 남북 협력 연구는 초기 조사 단계에서부터 식물의 분류〃동정, 생태 특징과 재배 가능성 조사 및 유용성 평가를 병행할 수 있다. 이런 시도는 희귀종이나 미기록 종 발견과 연구가 미비한 북측 연구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한반도 자생식물을 유용 자원으로 개발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현재 백두산은 국제생물권 보호구로 지정돼 수집이 불가능하다. DMZ의 자생식물 또한 지역 특수성과 자연 생태 보호를 위해 대량 채집이나 지역 내 재배가 어렵다. 그러나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는 백두대간 줄기에 위치해 있어 지역 자생식물 조사를 지속해 왔다. 소량 수집한 식물 시료의 유용성을 조사할 수 있는 천연물 정밀 분석 기술 개발과 야생식물을 효과 높게 재배하기 위한 스마트팜 기반 재배 기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스마트팜 기술은 북측 백두대간의 희귀 약용 식물이나 버섯, 각시투구꽃, 모데미풀, 숲바람꽃 등 아름다운 관상식물을 북한의 평야지대 또는 남측 지역에서 재배하는 방법 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한반도 백두대간 식물은 단순히 산에서 만나는 예쁜 꽃, 배고픈 이들의 구황작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활용 가능성이 있는 산업 자원이다. 도서 지역 및 제주도·울릉도 식물 연구, 남측 산간 지역 식물 연구를 백두대간 줄기의 한반도 자생식물로 확대해서 면밀히 조사하는 한편 바이오 산업 자원과 고부가 가치 농업 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권학철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천연성분응용연구센터장 hkwon@kis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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