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기술탈취 천태만상... 계약 전 기술자료 요구하고 서면조차 미발급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A사는 거래처로부터 부품 개발 주문을 받아 1년여간 2억원을 투입, 부품과 설비까지 설계·제작했다. 정식 납품 단계에서 기술자료 일체를 요구했고 얼마 후 양산하지 않겠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거래처로부터 기술자료를 건내받은 다른 업체가 전량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B사는 거래처 전자결재 시스템을 구축하고 본사에 상주하며 운영과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거래처는 고도화 사업 과정에서 B사의 경쟁사를 선정, B사가 저작권을 지닌 소스코드를 무단 복제·탈취해 해당 업체에 제공했다.

중소기업중앙회(회장 박성택)는 '대·중소기업 간 기술탈취 실태 및 정책 체감도 조사' 결과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소기업은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기술자료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고 기술자료를 제공하면서 서면도 제대로 발급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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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대상 기업 501곳 가운데 17곳(3.4%)은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를 요구받았다고 응답했다. 기술자료를 요구받은 시점은 계약체결 전 단계(64.7%)가 가장 많았다. 이어 계약 기간 중(29.4%), 계약체결 시점(5.9%) 순으로 꼽혔다.

기술자료를 요구받아 제공한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13곳 가운데 7곳(53.8%)은 대기업으로부터 서면조차 발급받지 못했다. 3곳(23.1%)은 서면은 발급받았으나 협의가 아닌 대기업이 작성을 주도한 서면을 받았다. 기술탈취 관련 분쟁이 발생해도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계약 전 기술자료만 넘기고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은 피해사례 제보도 있었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A사는 “거래처가 다른 협력업체로부터 제품을 납품받기로 계약하고 우리 기술자료를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고 토로했다.

대기업은 주로 불량(하자) 원인 파악(51.9%), 기술력 검증(45.9%)을 명목으로 기술자료를 요구했다. 납품단가 인하에 활용(24.6%), 타 업체에 기술자료를 제공해 공급업체 다변화(11.2%) 등 직접적으로 협력업체 손해가 예상되는 이유를 거론하는 사례도 상당 수 집계됐다.

중소기업은 정부가 발표한 기술탈취 근절 대책에 큰 기대감을 표했다. 정부 대책이 도움이 된다는 응답(41.9%)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13.8%)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특히 과징금 상향 및 징벌적 손해배상 등 처벌강화(44.7%), 기술탈취 행위 범위 확대(22.8%), 기술임치·특허공제 지원제도 활성화(14.6%), 집중감시업종 선정 및 직권조사 실시(10.2%) 등이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다.

이재원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중소기업도 정부 대책이 기술탈취 근절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하지만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으면 사실상 거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서면을 발급해 권리관계를 분명히 하고 중소기업 기술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기술거래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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