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게임 노조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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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 노동조합 설립 바람이 불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개발자들이 많이 모인 집단 특성 때문에 그 이유에 관심이 높아진다. 표면적으로는 노동환경 개선과 과실분배 요구가 노조 설립 배경으로 꼽힌다. 물론 노조 설립에 따른 우려 섞인 시선도 대두된다.

최근 일과 삶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게임 노동자들도 근무 환경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별 근무, 전환근무(프로젝트가 엎어지면 팀원이 다른 팀으로 가거나 회사를 떠나는 행태)로 대표되는 고용불안 외에도 크런치 모드에 따른 장기 근무, 포괄임금제로 말미암은 공짜 야근 개선,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한 기여 불인정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

지난 3일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넥슨지회(이하 넥슨 노조)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크런치 모드(개발 막바지 기간 야근과 철야를 지속해 일정을 맞추는 행태)를 워라밸모드로 바꿀 노동조합을 세운다”고 밝혔다.

넥슨 노조는 “게임업계 노동자들은 무리한 일정 요구,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떤다”며 “크런치 모드로 장시간 노동 과로는 일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포괄임금제를 문제로 꼽았다. 노조 측은 “포괄임금제 앞에서 야근과 주말 출근은 공짜였다”며 “회사 매출은 증가했지만 노동자 값어치는 제 자리였고 공정한 분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넥슨 측은 노조설립과 관련해, “근로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에 대해 존중한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넥슨에 이어 스마일게이트에도 5일 노조가 설립됐다. 스마일게이트 노조는 “회사는 엄청난 매출을 내고 있으나 포괄임금제 속에서 임금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같은 일을 하지만 비정규직이어서 불안에 떨었고 책임과 과로는 개인이 감당할 몫”이라고 출범 이유를 밝혔다.

스마일게이트 역시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을 존중한다”며 “그동안 구성원들과 적극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앞으로도 합법적 노조활동은 물론 비 노조원 의견도 경청해 회사 발전과 구성원 행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넥슨노조는 설립 닷새 만에 800명을 확보했다. 스마일게이트노조에는 설립 발표 3시간이 채 안 돼 100명이 넘게 가입했다.

반면 노조설립에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국내 업계가 장시간 집중 근무를 통해 성공적으로 신작을 출시하고 수익을 내왔기 때문이다. 노조 요구대로 노동환경을 개선하면 성장세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염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크런치 모드를 없애려면 일정과 인력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며 “일정을 늘리면 출시 일정을 못 맞추고 인력은 쉽게 늘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적절한 보상 수준을 찾는 것으로 타협해야 한다”며 “포괄임금, 근무시간을 볼모로 운영 및 개발에 영향을 미친다면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임은 흥행산업이다. 완성도만큼이나 출시 시점이 중요하다. 라이브 중인 게임이나 개발 중인 게임 모두 그렇다. 일정 부분 집중 근무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근무환경 개선 운동을 진행한 넷마블은 2018년 1분기 신작을 내놓지 못했다. 4월에야 올해 첫 게임 피싱스트라이크를 내놓았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올해 2월 “중국과 속도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며 “플랫폼 확장과 자체 IP육성, AI 게임 개발, 새로운 장르 개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넷마블의 일하는 문화 개선 직후에 나온 이야기라 업계는 근무시간 조정에 따른 속도 경쟁 하락으로 풀이했다. 앞서 넷마블은 속도전을 가장 잘하는 회사였다. 한 해 신작 라인업이 20개에 육박하는 회사였다.

게임 방향성 간섭도 걱정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상품에 개발자 개인 목표를 녹이려는 현상이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개발 라인 힘이 강한 회사에서는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개발이 이뤄지는 곳이 많다”며 “의견 조율하는데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조업 기반 쟁의 문화가 게임 업계 조직 문화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게임 이용자들도 우려 섞인 의견을 내놓았다. 한 게임 이용자는 “게임 운영 특성을 모르고 업계에 들어온 건가 의심이 든다”면서 “버그에 서버 떨어졌는데 파업한답시고 빨간 띠 두르고 책임을 회사 탓으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이 이용자는 이어 “개발자가 넘쳐나서 취직이 힘든 시대”라며 “이용자가 다 떠나 시장이 황폐해지면 누가 책임질 것인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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