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가 궁지에 몰렸다. 미세먼지 주범 이미지에 BMW 사태로 화재 위험 차량이라는 오명을 썼다. 내달부터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한 디젤차 배출가스 측정 방식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디젤차 딜레마에 빠졌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9월부터 새로운 배출가스와 연료효율 측정 방식인 국제표준 배출가스 시험방식(WLTP)을 모든 승용 디젤차에 적용한다. 측정 방식에 실제 도로 주행 조건을 포함해 인증 자체가 까다롭다. 가속과 감속 상황을 추가했고, 주행시험 시간도 30분으로 10분가량 늘었다.
자동차 업체는 깐깐해진 측정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배출가스재순환장치(EGR), 희박질소촉매장치(LNT) 등 배출가스 저감장치 외에 요소수를 사용하는 선택적환원촉매장치(SCR) 등을 추가 장착해야 한다. 저감장치 추가 장착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입장에서 디젤차 매력이 반감될 전망이다. 업계는 SCR 장착에 따라 100만~300만원까지 가격 상승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업계 입장에선 디젤차 지속 생산이 부담이지만 수요가 꾸준해 당장 포기할 수 없다. 디젤차를 둘러싼 온갖 악재에도 다른 연료보다 효율이 우수한 디젤차 인기는 여전하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디젤차는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한 49만4359대가 팔리며 가솔린차(45만2356대)를 앞질렀다.
업체는 새 측정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신형 모델을 투입한다. 디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주력인 쌍용자동차는 자사 디젤차에 SCR 추가 탑재를 확대한다. G4 렉스턴 새 SCR 디젤 엔진 장착 모델은 지난달 환경부 배출가스와 소음 인증을 통과하고 판매 준비를 마쳤다.
기아자동차 모하비도 배출가스 대응을 위해 2018년형 생산을 잠시 중단하고 저감장치 성능을 높인 2019년형 모델 출시를 준비 중이다. 두 차종 모두 배출가스를 줄이고 상품성을 개선하면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부 업체는 판매 비중이 낮은 디젤 모델 생산을 중단했다. 현대자동차는 새 측정 방식 도입에 앞서 그랜저, 쏘나타 등 승용 디젤 모델 4종을 단종하기로 했다. 고가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장착하면 판매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디젤차 규제에 대응하는 대신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 파워트레인 비중을 높이겠단 전략이다.
새 측정 방식은 국산차보다 수입차 업체에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 국내 법규에 따라 파워트레인 변경이나 개조 등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국산차와 달리 수입차는 본사와 협의를 거쳐야 해 빠른 대처가 어렵다. 일부 수입차 업체들은 신차 국내 도입 시 인증이 까다로운 디젤 모델을 제외하고 가솔린이나 하이브리드 모델만을 출시하는 사례도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디젤차를 둘러싼 악재에 저감장치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업체 입장에선 갈수록 디젤차 판매 자체가 부담되는 상황”이라면서 “새 측정 방식이 디젤차 퇴출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연 자동차 전문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