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에 보급된 전기차 수는 3만6385대다. 연말이면 5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본지는 전기차 확산의 핵심인 충전기인프라 실태를 조사했다. 충전인프라 서비스 제공업체 타디스테크놀로지와 함께 전국에 구축된 전기차용 공용 급속충전기(50㎾h급 이상) 2634기의 사용실태를 분석했다. 조사는 2018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운영된 충전기를 대상으로 실시간 사용정보를 제공하는 환경부 충전정보사이트 등을 기초로 분석했다.
이들 대다수는 환경공단·한국전력, 전국지자체 등 정부 예산으로 구축·운영되고 있다. 분석 결과 과거에 비해 충전인프라 사각지대는 해소됐고, 고장 난 채로 방치되는 충전기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정부 예산 계획에 따라 실적 채우기식으로 충전기를 무작정 구축한 탓에 충전 이용객이 몰리는 곳만 몰릴 뿐,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충전기가 전체의 15%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전국 충전기의 하루 평균 사용 횟수는 1.02번에 불과했다.
◇하루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전국 충전기 73%
이번 조사에서 전국 충전기 사용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개월 동안 전국에 깔린 급속충전기 2634기의 사용횟수는 총 48만7108건으로 하루에 2691번꼴로 사용됐다. 전체 충전기 수를 고려하면 충전기 당 1.02번 사용한 셈이다. 정부가 급속충전기 사용지침 가이드로 제시한 최대 이용시간 40분을 적용하면 하루 23시간 이상이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평균 10회 미만 사용된 충전기는 99%(2604기), 1회 미만은 73%(1937기)로 각각 집계됐다. 특히 이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충전기는 386기로 나타났다. 이는 충전기 가격과 설치비 등을 따지면 100억원이 넘는 규모다. 여기에 충전기 사용과 상관없이 매달 한국전력에 납부하는 충전기 기본 전기요금이 8만원 수준으로 연간 100만원이나 된다. 384기를 적용하면 약 4억원에 이른다.
반면에 충전 이용이 몰리는 곳은 크게 몰렸다. 전체 충전 사용 횟수 48만7108번 중에 78%(38만3125번)가 불과 698개 충전기에서 발생했다. 전국 2634기 충전기 중에 일평균 최소 10회 이상 사용된 충전기는 30기에 불과했다. 상위 30기 충전기가 전체 사용량의 20%를 차지했다.
제주도청 내 급속충전기는 일평균 사용 횟수가 27번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1회 최대 사용시간(40분)을 적용하면 하루에 18시간 동안 충전기가 가동되고 있는 셈이다. 하루에 한 번도 쓰지 않는 다수의 충전기와는 크게 상반된다.
이용권 타디스테크놀로지 대표는 “전국에 깔린 공용 충전기의 6개월 간 사용수를 분석해 보니 전기차 증가 수와 비례해 사용률이 늘고 있었다”며 “다만 충전기 사용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 충전기 수를 늘리는 것만큼이나 효율적인 위치 배분도 고려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국에서 공용 급속충전기 사용률이 높은 곳은 전기차 보급이 많은 제주·대구·서울·경기 순으로 나타났다.
◇정부 예산이라고 무작정 설치에만 급급
전국에 운영 중인 급속충전기 가운데 한국전력과 KT,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의 충전기 사용률이 크게 저조했다. 한국전력이 전국에 설치해 운영 중인 급속충전기 845기 중에 6개월 간 10회 미만 사용된 충전기는 48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충전기는 123기로 나타났다. 190기를 운영 중인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는 제주도 자체 충전 인프라와의 경쟁에서 밀려 사용률이 저조했다.
전국에 가장 많은 급속충전기를 운영 중인 환경공단 충전기는 총 1217기로 6개월 동안 미사용된 충전기 수는 17기, 10회 미만은 88기에 불과해 비교적 양호했다.
반면에 제주도와 대구환경공단이 구축한 충전기는 사용률이 일평균 10~20회를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지역은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데다,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한편 전기차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최적의 장소에 충전소를 구축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관련 업계는 사용이 저조한 전국 공용 충전기에 대한 관리감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들 대부분의 충전인프라가 정부 예산으로 지원된 만큼, 정기적인 관리감독을 통해 패널티를 적용하는 등의 이용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부분의 공용 급속충전기는 환경부와 산업부, 지자체 자금으로 세워진 것으로 이들 예산을 이용해 사용자 접근성은 고려하지 않고 충전기 설치에만 급급한 사례가 적지 않다”며 “정부는 국가 예산으로 운영 중인 충전기의 사용 실태를 파악해 패널티를 적용하는 등의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환경공단을 통해 년 400억원 안팎의 정부 예산으로 600기 이상의 급속충전기를 전국에 보급해왔다. 공기업인 한전도 정부 예산을 들여 민간 사업자를 선정해 충전기를 구축했다. 에너지공단과 경기도 역시 민간을 대상으로 충전기(50㎾ 기준) 당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한다.
국내 전기차용 급속충전기 가격은 1500만~2000만원 수준이며 설치비는 장소에 따라 최소 10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이 든다.
한편 정부와 업계는 올해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나 강원·충정 등 충전인프라가 비교적 많지 않은 지역을 위주로 약 1000기의 급속충전기를 구축할 방침이다.
박태준 자동차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