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老獪)하거나 사악(邪惡)하지는 않지만 (경제)머리는 비어 있는 것 같다.”
현 정부에 대한 어느 경제 전문가 진단이다. 정부 개혁 방향에 공감하고, 이전 보수 정권과의 차별성과 도덕성도 인정하지만 경제라는 현실 앞에서는 무능하다는 비판이다. 거친 표현만큼 비판의 강도를 가늠하면 된다.
정부는 18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9%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은 이보다 0.1%포인트(P) 낮은 2.8%로 내다봤다. 투자, 소비, 고용 등 각종 지표가 보여 주는 경고음을 반영한 조치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조치도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번 하반기 경제 정책 방향은 현재 경제 침체 국면을 탈출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자기 고백이다.
경제 부총리도 그동안 전망이 너무 '장밋빛'이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이번 전망치가 재정 보강이나 개별소비세 인하, 근로 장려 확대 등을 반영하지 않은 수치라고 항변하지만 장기 대책이 부재한 일회성 혜택으로 과연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일지는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숫자 0.1%P보다 향후 한국 경제 방향성에 대한 우려다.
현재 대내외 경제 상황은 호재보다 악재가 많다. 미국·중국 등 격화된 국제 간 무역 분쟁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고, 국내도 각종 경제지표가 어두운 메시지만을 던지고 있다. 6년 4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지만 반도체가 주도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빼면 약 227억달러 적자다. 중국 추격이나 반도체 산업 경기 사이클을 감안하면 이런 호황도 몇 년 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 머리'가 없다는 비판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를 타개할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기업인은 현 정부 경제 정책에 우려를 표한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전체 파이를 키우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적폐 청산'이라는 프레임으로 과거 문제 혁신에 몰두했다. 많은 국민이 지지했고,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잘못된 과거를 혁신하자는 현 정부가 유독 경제, 산업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과거의 틀을 고집한다.
은산분리 원칙에 묶인 인터넷전문은행 사례를 보자.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지만 은산분리 원칙이 세워지던 시절과 지금의 경제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이 원칙에 인터넷전문은행은 증자조차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
파괴력이 인터넷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기업은 은행 법인계좌 개설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은행에서 관련 업종 코드를 등록해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에 대한 정부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경쟁국은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신규 투자가 몰리고, 새로운 유니콘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국내도 각종 세미나와 콘퍼런스가 열리고, 각종 규제 개혁 방침이 쏟아졌다. 구호를 외치고 기치는 세웠지만 그다음이 없다.
1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취임 1년을 맞아 산업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지난 1년 동안 가장 부족한 것은 재벌 개혁”이라고 밝혔다.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이유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다. 그런데 기업에 대한 시선은 아직도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