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발전과 멸종 사이, 과학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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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지난 5일 정부가 저출산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출산율 위주 정책에서 2040세대 삶의 질 개선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과 해결책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인지 발표를 본 젊은 세대 생각은 전환되지 않은 듯하다. 정부 대책보다 '우리가 선택한 멸종'이라는 누리꾼 논평이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저출산 추세는 과학기술계에서도 걱정하는 문제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수 인재 유입은 줄고 있다. 학령인구까지 감소하면 과기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역대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야별 지원을 늘리고 대학 기초연구 투자비를 증액하는 등 이공계 인력 육성 정책을 꾸준히 내놓았지만 상황은 나빠지고 있다. 저출산 대책과 비슷한 양상이다. 젊은 세대가 한국 과학의 멸종 역시 선택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최근 국내외 과학기술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이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지속가능한 발전'은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 필요를 충족시키는 개발을 일컫는다.

UN 환경개발위원회(WCED)가 1987년 발표한 '우리의 미래' 보고서를 통해 공식화했고 2015년 UN에서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를 의제로 채택, 2030년까지 이행하기로 결정하며 지구촌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 목표가 됐다.

17대 목표에는 빈곤과 기아의 종식, 건강한 삶, 공평한 교육, 양성평등, 불평등 완화, 기후변화 대책, 생태계 보호 등 세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지표가 포함됐다.

빠른 과학기술 발달과 급속한 지구 환경파괴 시간대가 겹치다보니 몇몇 연구개발 결과는 생태계 위협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지구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 발전 성패를 크게 좌우하는 요소는 바로 과학기술이다.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SDGs 달성에 과학기술사회가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각국 과학한림원 역할이 강조되는 추세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도 최근 과학기술 분야 국제기구 활동을 하며 SDGs 달성을 위한 과학기술 역할과 방법을 찾고 있다. 논의 일환으로 올 가을 '2018 한국과학주간' 주요 주제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과학기술'로 정했다. 노벨상 수상자와 각국 과학한림원 대표단을 비롯해 과학기술 리더가 한자리에 모여 주제 발표와 토론을 한다. 과학한림원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병행세션에서는 요즘 우리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문제인 '미세먼지'에 대해 해당 분야 해외 전문가들과 토론한다. 이어지는 국제과학인권회의에서도 SDGs와 기후변화를 인권과 연계해 다뤄볼 계획이다.

세계 석학이 혜안을 나누는 자리인 만큼, 더 나은 현재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미래 준비 기틀을 마련하는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림원 활동이 차라리 멸종을 택하고 싶은 현재 젊은 세대 삶의 질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고, 이공계 기피 현상 해소와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발전'은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인 향상과 성숙을 의미한다. 평등한 사회, 깨끗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과학기술계 노력이 당장 현재 사람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거나 과학기술인이 되도록 할 수는 없지만 미래 세대를 행복하게 만들어 후대와 연결을 이어가도록 할 수는 있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근대 철학을 완성한 사람으로 꼽히는 칸트는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는 '과학자는 어떤 꿈과 운명을 기대할 수 있는가?'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경제성장 도구'에서 벗어나 다음 역할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이 '희망 실현을 위한 지렛대'였으면 좋겠다.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mcl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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