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기업 입장과 달랐던 이재용·신동빈 총수 지정...'고무줄 잣대'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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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집단 지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과 롯데의 총수(동일인)를 변경 지정했다. 30년 동안 이어진 '삼성=이건희', '롯데=신격호' 공식이 '삼성=이재용', '롯데=신동빈'으로 바뀌었다.

공정위는 '중대·명백한 사유'가 있어 총수 변경 지정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정위 판단은 각 기업 입장과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불명확한 총수의 정의를 공정거래법으로 규정해 공정위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매년 지정하는 총수…변경은 '이례적'

공정위는 1987년부터 매년 대기업집단을 지정하면서 집단별 총수를 함께 지정하고 있다.

총수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각 대기업집단의 사실상 지배자'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대외적·상징적 의미가 크다. 공정위 차원에서는 누가 총수가 되느냐에 따라 공정거래법 적용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정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총수가 바뀌면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규제 적용 대상인 '총수일가' 범위가 달라진다. 공정위에 기업집단 허위자료 제출 시 고발 대상도 총수가 된다.

그동안 공정위는 각 대기업집단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총수를 지정했다. 기존 총수가 사망하는 등 특이사항이 발생하지 않는 한 총수를 변경 지정하는 사례도 극히 드물었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기존 총수가 생존해 있는데 지정이 변경된 사례가 없지는 않다”며 “LG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1995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이듬해 공정위는 LG 총수를 구본무 LG그룹 회장으로 변경 지정했다. 그러나 LG를 제외하면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번 삼성, 롯데와 같은 총수 변경 지정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공정위는 “총수 확정은 대기업집단 시책의 기준점이 되는 만큼 정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공정거래법 해석·적용을 거쳐 결정한다”며 “특히 종전 동일인을 변경할 때에는 경영현실과 함께 법적 안정성·예측가능성을 고려해 '중대·명백한 사정변경'이 확인된 경우에 한해 실시한다”고 밝혔다.

◇삼성·롯데·네이버, 모두 공정위 생각과 달랐다

공정위 해석에 따르면 이번 삼성, 롯데의 총수 변경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삼성, 롯데 모두 총수를 변경해야 할 '중대·명백한 사유'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삼성 총수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변경 지정한 첫 번째 이유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활동 참여 여부'를 들었다.

공정위는 “이건희 회장은 여전히 삼성의 최다출자자이자 그룹 회장 직책에 있지만 2014년 5월 입원 후 현재까지 일체의 경영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직·간접적으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두 번째 근거로는 '이재용 부회장의 영향력'을 꼽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보다 삼성 전체의 지분보유는 적지만 삼성물산 등 지배구조상 최상위에 위치한 회사 지분을 최다 보유하고 있고,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서 사실상 기업집단 지배구조 정점에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지난해 이뤄진 미래전략실 해체가 삼성 조직운영에 '중대한 결정'이었으며 이것을 이재용 부회장이 결정·실행했다는 점을 영향력의 근거로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은 공정위에 대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제출할 때 총수를 종전대로 이건희 회장으로 유지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공정위에 제시했다. 이번 공정위 결정과 관련 삼성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공정위는 롯데 총수를 변경한 이유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 대해 작년 6월 대법원에서 한정후견인 개시 결정이 확정된 사실을 들었다. 한정후견인 개시 결정 이후 롯데 내에서 지주회사 전환, 임원변동 등 소유지배구조상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지주의 개인 최다출자자이자 대표이사며, 지주체제 밖 계열사 지배구조상 최상위에 위치한 롯데호텔의 대표이사로서 사실상 기업집단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고 판단했다. 당초 롯데는 공정위에 자료를 제출하며 총수는 종전대로 신격호 총괄회장으로 지정하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롯데는 공정위 발표 이후 “신동빈 회장이 공식적·실질적으로 롯데를 대표해 경영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며 “그동안 신 회장은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룹 순환출자를 모두 해소하는 등 그룹 지배구조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롯데 비상경영위원회는 롯데 개혁 작업이 지체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기존 총수인 이해진 창업자 대신 네이버㈜를 총수로 지정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해진 창업자를 총수로 유지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해진 창업자는 작년 처음 총수로 지정된 이후 네이버 주식을 매각했다.

공정위는 “이해진 창업자는 최근 지분 0.6% 매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네이버㈜의 개인 최다출자자(지분율 3.72%)며 기타 지분분포에도 중대한 변화가 없다”며 “이사직 등을 사임했지만 회사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모호한 총수의 정의…'고무줄 잣대' 논란

공정위의 총수 지정이 삼성, 롯데, 네이버의 판단과 모두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다른 대기업도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공정위의 총수 지정 판단과 이견이 생길 수 있어 비슷한 갈등이 지속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근본적으로 공정위 '판단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정거래법상 총수 정의가 규정되지 않아 공정위가 '고무줄 잣대'로 총수 여부를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총수는 특정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 또는 법인”이라며 “공정거래법상 총수 개념이 별도 정의된 바가 없어 기업집단 정의 규정으로부터 기준이 추론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분요건'과 '지배력요건'을 중심으로 총수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그룹 전체나 주력(핵심)회사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느냐 또는 친족 지분을 합쳐서 지배에 필요한 지분 갖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게 지분요건”이라며 “주요 임원의 선임과 해임, 조직 변경, 사업구조 변경과 관련 중대한 영향력 행사하느냐 등이 지배력요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 요건 충족 여부 판단이 공정위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삼성의 경우 공정위는 이건희 회장이 여전히 삼성의 최다출자자이자 회장의 직책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배적 영향력 행사 불가 등을 이유로 이재용 부회장을 총수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총수 정의, 지정 절차 등을 공정거래법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공정위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도 현재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일환으로 해당 과제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 국장은 “실무적으로 자문을 받은 결과 가변성 있는 현실을 반영하려면 명확히 규정보다 현행 규정 해석으로 탄력적으로 하는 게 좋고 예측가능성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관련 내용은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가 논의할 안건 중 하나”라며 “특별위에서 검토를 거쳐 결정하겠지만 현재로선 현행 규정을 유지하자는 게 공정위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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