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과학기술유공자는 한국 과학기술 발전사에서 굵직한 업적을 일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과학입국의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당시의 치열함이 후세에도 이어지길 간절히 바랬다.
권이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제 시대(1923년)에 태어나 우리나라 과학기술 진흥 풍토를 조성한 주역이다. 과학기술 발전사의 산증인이다.
권 교수는 “일제 강점기 어려운 역사를 지내오면서 '과연 우리나라가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는데 기적을 이뤘다”면서 “조그만 땅덩어리, 반토막난 곳에서 이만큼 했으면 과학자들이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고 강조했다.
민계식 현대학원 이사장은 현대중공업 재직 시절을 떠올렸다. 장기 관점의 연구개발(R&D)을 강조했다.
민 이사장은 “CEO 때도 조선 사장단 회의를 하면 법과대학 동창회라고 할 만큼 모두 법대 출신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과학은 10년쯤 후부터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1년 지나서 흔들어대면 결과가 나올 수 없다”면서 “제가 주장한 것은 R&D를 흔들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일본이 불경기라고 해서 R&D 구조조정할 때, 이게 오히려 기회라고, 우리는 R&D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는 전기가 끊기는 병원에서 연구했다. 유행성출혈열 병원체을 발견하고 진단법과 백신까지 개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으로부터 연구비를 따오기 위한 연구 기획이었지만 끈기와 열정이 성공으로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군 내 감염 때문에 유해성출혈열을 정복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에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수술실에서 쓰는 전기를 끌어다 연구했다”면서 “전기를 가져오다 일하는 사람이 다치는 에피소드까지 나올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돈을 받을 수 있는 연구 주제가 제한돼 냈던 연구계획서가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라면서 “우리나라의 싼 인건비 덕분에 미국 교수 한 사람의 연구비를 가지고 3~4명이 달라붙어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50년이 지난 지금 국내 연구 성과가 정체한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해외 연구의 꼬리를 잡기보다 줄기세포처럼 파급력이 큰 분야에서 독창적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완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 세대 때는 정부의 뒷받침도 있었고, 과학자들도 대우를 바라기에 앞서 의욕이 대단했다”면서 “21세기는 바이오 시대가 될 텐데, 지금이라도 이 분야 인력 양성에 신경을 써야 먹거리, 일거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