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비즈니스나 여행을 다녀 본 사람이라면 나라마다 화폐가 달라서 환전을 해야 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낯설고 먼 나라에서 물건을 살 때 그 나라의 화폐 가치와 우리나라 물가를 머릿속으로 저울질해 봤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돈이 그대로 통용됐으면 하는 상상도 하면서.
보통 화폐 가치는 어떻게 보장될까. 특정 화폐는 어떤 국가가 인정한 경제 신뢰도의 척도다. 다만 국제간 거래의 경우 상대 국가가 있기 때문에 한 국가가 인정한 가치가 그대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서 각 나라의 화폐도 일반 상품처럼 거래가 되는 외환 시장이 존재하며, 경제와 지정학 문제가 서로 얽혀 있어서 화폐 가치도 시시각각 변한다. 현재 국제 거래에서 기준이 되는 화폐는 하나같이 경제력과 군사력이 막강한 강대국의 통화다.
요즘 뉴스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가상화폐다. 현재 가상화폐에 대한 법률상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물로서 실체가 없으니 '가상' 화폐라고 하지만 발상지인 미국을 포함해 대부분 나라에선 암호화폐(crypto currency)라고 한다. 또 전통의 관점에서 보면 화폐로서의 가치 견해도 갈린다. 현재 지구상 어떤 국가도 가상화폐를 '돈'으로 인정한 나라는 없다. 가상화폐 생태계에 참여하는 개인이 서로서로 가치를 인정하는 것에 온전히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이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거래를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가상화폐 거래량이 매우 크다보니 국가가 거래세를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세금을 내는 카지노처럼 국가가 인정한 게임 머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열광할까.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미래 불안감이 그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일반 견해다. 현재 쌓아 놓은 자산은 적고 미래에 기대되는 수익도 만족스럽지 못하니 일확천금을 노리고 복권을 사는 심정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자본주의 역사에는 여러 번 버블이 있었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자본주의에서 버블이 필요악일 수 있다.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수익 신화가 과잉 투자를 부르고, 그것으로 인한 산업이 발전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비트코인 열풍을 보면 시중에 풀린 투자 여력은 충분한 것(?) 같아 보인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가 망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거래 시장 규모가 하루 2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작은 돈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전체 경제 규모(2016년 GDP 1637조원, 유동자금 약 600조원)로 보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직접 투자한 사람들이 돈을 떼이거나 잃을 것이고, 다단계 판매나 거래소·채굴업 등 관계자들이 손해를 볼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파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상화폐와 상관없이 여기에 사용되는 블록체인 기술은 앞으로 인간의 경제 활동에 이용될 중요한 기술임에 틀림없다. 정부도 이 부분에서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가상화폐 열풍에 따른 미래 신기술에 대한 민간 투자가 헛되게 하지 않으면서 핀테크와 같이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도 모색해야 한다.
가상화폐 버블이나 열풍에 편승해서 일확천금을 챙긴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내세우는 가상화폐 관련 여러 대책들이 잘 이행돼 많은 사람이 고통 받지 않았으면 한다. 한편으로 가상화폐를 둘러싼 헌법 소원이 벌어지고 있다. 가상화폐 이상 과열에 따라 정부가 발표한 '가상통화 투기 근절을 위한 특별 대책'으로 인해 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는 것이다. 각자 책임 아래 자율 투자를 하고 참여한 경제 행위에 왜 정부가 간섭하느냐는 의견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어떻게 나올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안치득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방송·미디어연구소장 ahnc@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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