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업계가 정부의 보통주 중심 투자 생태계 확보 방침에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벤처투자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단순 보통주 확대는 외려 초기 투자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컨버터블 노트(CN),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등 신규 투자방식 도입을 고민하는 것이 초기투자 활성화와 벤처캐피털(VC) 업계 발전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형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28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파르나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환전환우선주(RCPS) 투자는 국제적으로 일반적인 벤처투자 방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투자자들에게만 너무 유리하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며 “정부와 벤처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RCPS는 상환권과 전환권이 더해진 우선주를 의미한다. 회사 청산이나 인수합병(M&A) 시 잔여 재산이나 매각 대금 분배에 유리한 권리를 가진 동시에 투자 후 일정 기간 이후 투자금 상환을 요청하거나 보통주 전환 과정에서 전환가격을 조정(리픽싱)할 수 있는 주식이다.
벤처투자 업계는 정부의 보통주 중심 벤처펀드 조성 방침이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벤처캐피털 업계에 따르면 미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 90%는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김 전무는 “VC가 모험투자를 회피하고 있다는 주된 이유로 보통주 투자 비중이 적다는 것을 지적했다는 사실은 벤처투자 시장 투자 방식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우선주 투자 방식을 문제삼기 보다는 CN, SAFE 등 신규 투자 기법 도입에 대한 고민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생태계에 투자금을 공급하는 VC 대부분은 우선주 또는 CN, SAFE 등 방식을 택하고 있다.
SAFE는 미래에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로 다른 투자 방식과는 달리 만기상환 또는 이자 등 부채로 취급되지 않는다. 초기투자 과정에서 투자 기업에 대한 면밀한 가치평가가 어려운 만큼 기업공개(IPO) 등 보통주 전환 과정에서 적정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도 “현재 실리콘밸리 투자 방식의 대세가 된 컨버터블 노트는 당초 와이컴비네이터라는 VC가 초기 투자를 위해 도입한 것이 업계 전반으로 수용되면서 퍼진 것”이라며 “보통주냐 상환전환우선주(RCPS)냐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민간 자금이 혁신 경제로 흐를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혁신창업 생태계를 목표로 내걸며 벤처투자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정부가 여전히 지나치게 많은 부분에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 대표는 “정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0.13% 수준 벤처투자를 미국 등 주요 국가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벤처투자 자금 80% 가량이 정부 자금이라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벤처투자업계는 연대보증 철폐, 주식매수청구권(풋옵션) 행사 사유 축소 등 투자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자정 노력을 지속할 방침이다. 이종건 법무법인 이후 대표변호사는 “SAFE, CN 등 새로운 투자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지속적으로 정부에 의견을 전달할 계획”이라며 “포괄적 연대보증과 이에 준하는 수준의 풋옵션 조항에 대해서도 개선할 수 있도록 자체 권고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