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바꾸고, 개시조차 못한 '해외송금'...핀테크업체와 은행권 갈등골만 깊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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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핀테크 업체에 해외송금 규제를 풀었지만 일부 기업은 사업을 포기하고 업종을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의 높은 장벽뿐 아니라 은행권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이미 소액해외송금업 등록을 완료한 업체 대부분도 자금세탁방지법규제(AML) 등으로 개점휴업 상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일 년 반 동안 소액외화송금업을 준비하던 A기업은 업종을 변경하기로 했다. A기업에 은행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다. 함께 사업을 진행했던 은행 안에서도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 결국 해외송금 관련 사업을 접고 새로운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

A기업 관계자는 “처음 규제를 풀어주며 정부가 제시한 자본금 20억원 등 자격요건도 부담스러웠지만 실제 인가를 받고도 사업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와 아예 업종을 변경하기로 했다”면서 “주변에 우리말고도 사업을 접거나 업종 변경 한 기업이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기업은 9월 인가를 마쳤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외송금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자금세탁방지법 등에 발목이 잡혀 은행권과 제휴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은행을 거치지 않는 가상화폐를 이용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지만 별도 법적 문제와 국내 가상화폐 거래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걸림돌로 작용해 돌파구 찾기가 쉽지 않다.

이들 기업 모두 해외 송금방식으로는 기존 은행과 제휴를 맺어야 하는 '풀링'과 '프리펀딩' 방식을 사용한다. 풀링은 여러 건 소액 송금을 하나로 모아 은행 간 금융, 통신망을 통해 한꺼번에 보내 수수료를 낮추는 방법이다. 프리펀딩은 해외 대형 송금 업체에 미리 목돈을 보내고 나중에 고객 요청에 따라 해외 협력사를 통해 현지에서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은 이들 방식이 자금세탁방지 규범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뭉칫돈을 보내는 풀링은 돈을 쪼개 보내는 것보다 비용은 적게 들지만 이를 악용한 돈세탁 시도가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자칫 풀링송금에 출처가 불문명한 자금이 유입돼 문제 발생 시 중계은행은 수억 달러에 이르는 과태료를 물어야 할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업무가 중단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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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스타트업계는 은행이 신생기업을 경쟁자로 여기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해외송금액이 단일 3000달러에서 연간 최대 2만달러로 제한되기 때문에 돈세탁 등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핀테크 기업도 정부 가이드라인에 맞춰 전산시설 및 자금세탁방지 체계를 구축해 만일 사고를 방지하고자 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우려하는 AML규정 위반, 테러자금 유입에 대한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이를 감시하는 전문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면서 “이러한 방지책까지 모두 마련했는데 은행이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신생기업의 시장진출을 사실상 제한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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