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칼로 미래와 싸운다. 그러나 과거의 칼은 대부분 미래를 이긴다.”
카풀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를 제공하는 김태호 풀러스 대표는 얼마 전 업계와 정부 관계자가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라는 낡은 옷을 입은 규제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김 대표의 '규제와 싸움'은 진행형이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는 자가용 자동차를 이용한 유상 운송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출퇴근 시'에 한해 예외로 허용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몇몇 업체가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출퇴근이라는 모호한 규정 탓에 택시업계 등의 지속된 항의를 받았고, 지난해 말에는 불법 논란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최근 이들 업체에 또다시 악재가 터졌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5월 한 카풀앱 업체를 압수수색했다. 이용자 80여명이 여객운수법을 위반했다는 명목이었다. 운행 경로가 직장과 동떨어져 있거나 하루 이용 횟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국내에서는 차량공유 서비스가 규제와 싸우고 있는 사이에 해외에서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우버와 리프트를 시작으로 중국의 디디추싱, 싱가포르의 그랩, 아랍에미리트(UAE)의 카림 등이 각 대륙을 대표하는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로 성장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국내 제조 대기업 못지않을 정도로 외형이 커졌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사업 생태계는 규제를 만들고 이를 고수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허비한다. 업계에서는 규제를 지키는데 사용하는 돈이라는 뜻으로 '규제비용'이라는 말까지 유행할 정도다.
실제 규제는 전방위로 가해지고 있다. 핀테크 사업의 일종인 전자결제 서비스는 국내 사업을 위해 일정 부분 이상의 자본금을 필요로 한다. 숙박공유 서비스는 공중위생관리법에 저촉, 국내 서비스를 할 수 없다. 원격진료 의료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규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이제는 떨칠 때가 됐다. 시기도 좋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국정 기조로 잡고 있다. 창업 관련 주요 업무를 담당해 온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벤처부로 승격, 많은 권한을 갖게 돼 기업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 100대 과제 1호로 적폐 청산을 내세웠다. 산업계는 '낡은 규제'라는 적폐 청산을 기대하고 있다.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