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78> 이노베이터스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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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는 한 고조 유방의 9대손이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부친이 사망, 숙부 손에 맡겨진다. 스무 살 무렵 전국은 농민 봉기로 들끓는다. 유수도 형 유연과 함께 거병한다.

왕망은 40만 대군으로 봉기군을 진압하게 했다. 유수는 곤양에서 왕망군을 대파한다. 명망이 쌓여 갈 즈음 형이 피살된다. 봉기군 내 권력 다툼 탓이었다. 몹시 비통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다른 파벌에 대항하기에는 세력이 부족했다. 얼마 후 하북으로 파견된다.

왕랑과 격전을 벌이게 된다. 한 책사가 수공을 제안했다. “적이 강가에 진 치고 있으니 둑을 터뜨리면 몰살시킬 수 있습니다.” 유수는 잔인한 일이라며 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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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덕정을 펼치며 군심을 잡아 간다. 왕랑을 격파한 후 적과 내통한 밀서들이 나오지만 보지 않고 모두 태워 없애라고 명한다. 낙양 태수인 주유가 형 유연 모살에 가담한 터였지만 책임은 묻지 않았다. 형벌은 가볍게 했고, 상은 후하게 했다.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 '토끼를 잡은 후에는 사냥개를 삶는다'는 중국 고사와 달리 후한의 개국공신은 모두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영어에 '사가(Saga)'라는 단어가 있다. 영웅의 전설을 말한다. 우리말로 하면 대하소설 정도다. 위대한 기업가의 일대기치고 이 단어가 아까울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 시대 누군가의 삶에 붙인다면 그건 단연코 스티브 잡스다.

1976년 자기 집 주차장에서 창업해서 1985년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다. 1997년 파산 직전에 최고경영자(CEO)로 돌아왔다. 2011년 10월 죽음을 맞기까지 애플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개인용컴퓨터(PC), 에니메이션 영화, 음악,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팅, 일렉트로닉스 리테일, 디지털 출판. 무려 7개 산업을 바꿨다. 그가 창조한 아이맥(iMac), 아이팟(iPod), 아이튠스(iTunes), 애플 스토어(Apple Store), 맥북(MacBook), 수많은 픽사(Pixar) 만화 영화는 모두 그 이전에 누구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미국 기업 역사상 그와 견줄 혁신가는 단지 토머스 에디슨, 헨리 포드, 월트 디즈니뿐이다. 가장 열렬한 팬을 둔 이는 단연코 잡스다. 게다가 그의 성향은 누구보다 자신이 만든 제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의 경영 방식은 더 생생해 보인다.

아스펜 인스티튜트의 CEO이기도 한 월터 아이색슨은 2012년 4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이란 기고문을 싣는다.

그의 14가지 리더십을 에피소드와 함께 담았다. 항상 몇 개 제품에 초점을 맞췄고, 단순함에 집착했고,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했다.

이윤에 앞서 제품을 우선했고, 소비자 생각을 뛰어넘고자 했다. 완벽함을 추구했으며, 끝없이 디테일에 매달렸다. 현실의 어려움은 무시하기 일쑤였다.

잡스와 자서전 작업을 마쳐갈 무렵 아이색슨은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궁금해 하던 차였다. “스티브, 왜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했나요?” 잡스의 답은 간단했다. “월터,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봐요. 그들은 원한다면 언제든, 어느 기업이든 갈 수 있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그 사이 우리가 만든 놀라운 것들을 봐요.”

잡스의 리더십은 상냥함과 거리가 멀었다. “캘리포니아 중산층 출신”이라는 그의 말처럼 거칠고, 무례하기도 했다. 회의 중에 종종 소리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경영진이 어느 기업에서보다 애플과 함께 오래 자리를 지켰다.

한번 주변을 살펴보자. 경영자로서, 혁신가로서 어떤 리더십이 바람직할까.

유수와 잡스의 리더십에 공통점은 없어 보인다. 한 사람은 유도(柔道)로 자신의 치세를 완성했다. '유약함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믿음의 표본이 됐다. 다른 한 사람은 열성, 격렬함과 함께 감성이란 단어로 살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닮은꼴 같다. 생애 마지막까지 놀랍도록 의리 있는 동료들과 경영진에 둘러싸여 있은 것만큼은.

두 사람이 진정 가치 있게 생각한 것은 혹시 이것 아니었을까. 비록 다른 방식으로 완성하기는 했지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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