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를 두고 정부가 법 뒤에 숨었다. 기본료 폐지가 초법 발상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서둘러 법을 수호해야 하는 임무를 자각했을까. 법을 지키면서 기본료 폐지 효과를 내도록 고안한 게 6·22 통신비 대책이다. 그러나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다.
선택약정할인율 25%를 보자. 법을 보면 할인율을 정한 이후 '100분의 5 범위 이내에서 가감'한다고 했다. 기존 할인율이 20%였으니 21%가 맞다. 그런데 정부는 '숫자 5를 더하란 뜻'이라며 대뜸 25%를 내놓았다. “법 제정 취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이 불문법 국가라도 된다는 말인가. '숫자 5를 더한다'라는 식으로 더 명확히 법을 제정했어야 한다.
할인율이 '지원금에 상응'하는지도 의문스럽다. 정부는 월 1만원, 24개월 24만원 할인 효과를 주장했다. 요즘 휴대폰을 구매하는 데 지원금을 24만원이나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불법 보조금을 받거나 15개월 지난 구형 휴대폰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금액이다. “20%로 올릴 때는 가만 있더니”라는 건 해선 안 될 말이다.
원래 선택 약정은 지원금 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만든 규정이지 통신비를 인하하는데 쓰라고 만든 규정이 아니다. '법 취지가 그렇다.' 오죽하면 선택 약정을 통신비 인하에 동원할까 싶긴 하지만 옹색해도 이렇게 옹색할 데가 없다.
보편 요금제는 어떤가. 요금 시작점을 3만원에서 2만원으로 끌어내리자면서 “저가와 고가 요금 차이가 3배인데 데이터 양은 100배 차이가 난다”는 명분을 내밀었다.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엄포를 놨지만 잘 보면 기본 데이터 300MB와 무제한 요금제를 비교한 결과다. 외국에선 흔한 일이다. 일본은 차이가 150배다.
더군다나 이건 헌법이 규정한 '사영 기업 경영 통제 불가' 원칙에 반하는 것 아닌가. 엄연히 통신사는 사기업이다.
하자고 덤비면 끝도 없이 불합리함이 나온다. '정서법'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실정법까지 지켜야 하는 당국자의 고충도 헤아려야 하겠지만 법 적용이 편협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6·22 대책의 앞날이 순탄하지는 않아 보인다. 정당성도 의문이지만 통신사와 투자자가 가만 있지는 않을 거라며 벼른다. 두어 개 시행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나머지는 국회에서 시간을 끌다가 몇 년 지나 없던 일이 될 공산이 충분하다. 요컨대 욕은 욕대로 먹고 통신비는 내리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럴 바에야 법도 지키고 요금도 내릴 묘안을 찾는 게 낫다.
본지는 시리즈 기사에서 '경쟁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경쟁이 안 되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시할 지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이대로 두면 경쟁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는다. 몇 가지 해결할 문제가 있다.
통신사가 휴대폰을 틀어쥐고 보조금과 판매장려금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한 요금·단말값 경쟁은 요원하다. 불필요한 낭비가 심하다. 합리화한 차별도 허용해야 한다. 통신사는 특정 고객에게 혜택을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차별 금지 원칙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을 선택하고 만다. 약정 족쇄를 풀고 새로운 통신사와 알뜰폰도 육성해야 한다.
우리는 아마추어 국가도 아니고 독재 국가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세계인이 지켜본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영역은 더 그렇다. 우리가 잘해 온 덕분이다. 목적 달성만큼이나 절차상의 정당성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정당성과 효과 모두 의심스러운 정책을 택할 것인가 떳떳하고 효과 높은 길을 택할 것인가.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