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과 네트워크 이용 대가의 갈등이 국내 통신사 부담으로 종결되면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규제 체계 전반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IT 기업 상당수가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얻으면서도 산업 기여도가 낮은 데다 유한회사의 규정을 이용, 세금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부가 힘을 모으는 국가 차원의 대응으로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 놀이터인가
페이스북 사태는 국내 통신사와 글로벌 대형 인터넷 사업자 간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사태의 본질은 페이스북이 국내 가입자를 '인질'로 잡았다는 점이다. 속도가 느려져서 가입자의 불만이 폭주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SK브로드밴드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망 이용 대가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내 통신사가 결코 서비스 공급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 정도로 페이스북은 자신이 넘쳤다.
공짜로 캐시서버를 사용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SK브로드밴드가 들어주지 않자 한국으로 트래픽이 유입되는 또 다른 관문인 KT의 경로를 페이스북이 과감하게 끊어 낸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단 한국 소비자가 해당 서비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태를 방치하면 트래픽은 기하급수로 증가할 것이고, 한국 통신사는 막대한 국제 회선료 및 국제 접속료와 국내 통신망 증설 부담까지 이중·삼중으로 떠안아야 한다.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가 정식으로 국내에 인터넷데이터센터(IDC)나 캐시서버를 설치하고 정당한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하도록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게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일치된 견해다.
통신사 관계자는 “대용량의 동영상 콘텐츠가 늘면서 트래픽이 급증하는 상황”이라면서 “막대한 수익을 얻으면서 망 증설 비용을 분담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세금·공정경쟁 이슈까지
더욱 불합리한 것은 글로벌 IT 사업자의 경영 현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세금도 매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우선 한국에 '고정사업장'에 해당하는 서버를 두지 않는 수법을 쓴다. 정식 서버보다 지위가 낮아 고정사업장 기준에 미달하는 캐시서버 정도만 설치할 뿐이다.
캐시서버는 정보 전달 역할만 전달한다는 점, 임차 시설이라는 점에서 고정사업장 대접을 받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유한회사'를 이용해 정보 사각지대로 숨는다는 것이다. 정부가 투자 유치 명목으로 규정을 풀자 대거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유한회사는 매출, 영업이익 등 민감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 구글, 페이스북 등은 천문학 규모의 수익을 남긴다는 추측만 할 뿐 아무도 정확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모른다.
공정 경쟁을 펼치지 않아서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구글은 자사 애플리케이션(앱)을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 스마트폰에 넣도록 하는 이른바 '앱 선탑재'를 의무로 한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IT 업계는 유튜브, 지메일, 구글플레이, 구글 지도 등을 선탑재하면서 구글이 불공정 경쟁을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간 갈등 가능성…“국가 차원의 방향 정해야”
글로벌 IT 기업과 국내 산업계 간 갈등은 국가 간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의 특정 부처나 국회 정당이라는 단편 차원의 대응으로는 현실의 장벽을 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 합의를 통해 국가 과제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20개국(G20)이 지난 2015년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도입하기로 합의한 '구글세(BEPS 프로젝트)'는 자국 기업의 피해 우려와 조세 주권 등 문제로 아직까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유한회사 외부 감사 의무를 부여하는 '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4년에 관련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2년여를 끌다 19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됐고, 1월 국회에 제출된 외감법 개정안은 정무위원회에서 6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오세정 의원(국민의당)도 글로벌 인터넷 사업자를 포함한 부가통신사업자도 경쟁 상황 평가 자료를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 “글로벌 IT 사업자가 주로 미국 기업이어서 규제를 강화하면 통상 마찰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부처별로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범부처와 국회, 산업계가 협력해서 공동 대응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