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이 국민건강관리를 넘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된다. '100세 시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인 동시에 국가 건강보험 재정에 영향을 준다. 예방이 최우선인 만성질환 관리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만성질환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병적 상태다. 유전, 흡연, 운동, 스트레스 등 생활 습관과 생리적 기전이 원인으로 꼽힌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당뇨병, 골다공증, 고혈압 등 65세 이상 노령층 만성질환자가 급증한다.
◇노인층이 총 진료비 40% 차지…국가 재정 부담 가중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연도별 만성질환 진료비는 매년 10% 이상 꾸준히 증가한다. 지난해 만성질환 진료비는 24조9896억원으로 전년대비 12.4% 증가했다. 2011년(17조4734억원)과 비교해 무려 43%나 늘었다.
만성질환 진료비가 증가한다. 스트레스, 운동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고령화가 주된 원인이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657만명으로 전체 인구 13.2%를 차지한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7%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가 넘으면 '고령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부른다. 우리나라는 2026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는 진료비 부담도 늘어난다. 작년 우리나라 65세 건강보험 적용인구는 645만명으로 전체 12.7%를 차지한다. 이들의 총 진료비는 25조187억원으로 전체 38.7%에 이른다.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2만8599원으로 연평균 11.1% 증가 추세다. 전체 건강보험 적용인구 10분의 1을 차지하는 65세 이상 인구가 재정의 약 40%를 차지하는 구조다.
◇고령자 진료비 80%가 만성질환, 2018년부터 건보 재정 적자 예상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출하는 건강보험료는 대부분 만성질환 때문이다. 작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다빈도 질병 1위는 노년백내장(입원), 본태성 고혈압(외래)이다. 치매, 폐렴, 무릎관절증, 치주질환, 당뇨병 등 상위 10대 다빈도 질병 중 80%가 만성질환이다.
진료비 부담이 늘면서 국가 건강보험 재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기획재정부 주재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에서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지출 규모는 연평균 8.7%씩 증가해 2024년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총 급여비 중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25년에는 49.3%로 증가한다. 이런 추세라면 2018년부터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도 2023년경 모두 소진될 전망이다.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증가는 국가 재정은 물론 '100세 시대' 삶의 질도 떨어뜨린다. 혈압, 당뇨, 폐렴, 관절질환 등 대표적 노인 만성질환은 막대한 치료비와 고통, 정신적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과 고령자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정부 만성관리 사업 착수, 실효성 '물음표'
정부도 만성질환 위험성을 인지, 작년부터 관리사업을 펼쳤다. 보건복지부가 진행하는 '모바일 헬스케어 시범사업'은 만성질환 위험군을 선정, 보건소를 통해 관리한다. 작년 전국 10개 보건소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만성질환 위험군에게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올해 25개 보건소를 추가한다.
1차 의료기관을 통해 만성질환 환자를 관리하고,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사업도 한다.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은 전국 1870개 동네의원을 선정, 만성질환자나 위험군에게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방과 1차 의료기관 거점화라는 만성질환 관리 방향은 적절하다. 수행방식에 있어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의료정보 공유체계 미흡, 병원·환자 참여 동기 부족, 효과적 관리 도구 부족 등이 원인이다. 장기 전략까지 부재하면서 유헬스 프로그램,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사업 등 기존에 실패한 사례를 되풀이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만성질환은 다른 병에 비해 치료기간이 오래 소요되고 완치가 쉽지 않다. 환자는 치료를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기본 검사를 중복으로 하거나 진료기록을 직접 전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타 의료기관에서 처방 받은 약물, 각종 검사 결과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없어 체계적 만성질환 관리가 어렵다.
병원이나 환자가 만성질환 관리 사업에 참여할 동기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환자 참여 유도는 병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렸다.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은 1차 의료기관이 만성질환자 상담이나 교육 등을 했을 때 1회당 8500원가량 지원한다. 비대면 원격 모니터링이나 코칭을 할 경우 월 2만7000원 수가를 제공한다. 1차 의료기관 역할에 부합하고, 정부 지원까지 받아 윈윈 모델로 기대됐다. 지역 의원은 '계륵' 같은 존재라고 지적한다.
한 의원 관계자는 “동네의원이 만성질환 관리 거점이 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정부 계획도 공감한다”면서 “하지만 만성질환자 상담이나 교육, 원격 모니터링 등을 위해서는 추가로 인력을 채용하거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등 비용이 더 발생해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건강관리 도구도 부족하다. 현재 정부는 스마트폰 앱 '건강인(iN)'과 '엠(M) 건강보험'으로 자신의 혈당, 혈압 등 건강정보를 병원에 전송하게끔 한다. 건강보험 정보 확인을 위해 만든 앱을 만성질환 관리 사업에 활용한다.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해야 해 번거롭다. 만성질환자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는 빅데이터 시스템은 시도조차 못한다. 당초 정부 시범사업은 병원 당 60명이 넘는 만성질환자, 위험군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재 1만명 남짓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호 서울아산병원 유헬스센터 부소장은 “정부 만성질환 사업은 명확한 목표, 장기적 비전을 담은 거버넌스가 중요한데, 현재 정부 사업은 상당히 미흡하다”면서 “병원 참여를 유도할 효과적인 툴 개발과 만성질환 빅데이터 활용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산업 구조적 문제 들여다봐야
만성질환 관리는 의료산업 전반의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 의료정보 공유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다보니 환자 불편이 가중되고 병원 동기 유발이 어렵다. 정부가 1차 의료기관 중심으로 만성질환 관리 사업을 펼치지만, 여전히 환자는 2, 3차 대형병원으로 쏠린다. 만성질환 관리에 효율적인 '원격진료'는 수년 째 국회 상정조차 못한다.
병원을 찾는 사람(환자), 진료하는 사람(의사), 의료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정부 및 사보험사)이 모두 다른 구조적 특징도 이해해야 한다. 의료 서비스를 구성하는 주체가 다양하고 이해관계도 다르다. 만성질환 사업에 참여를 유도할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최두아 휴레이포지티브 대표는 “우리나라는 환자, 병원, 보험사 간 이해관계가 다르다보니 만성질환 참여 목적도 다르다”며 “우리나라 의료산업 구조를 이해하고 공통 목표 달성을 위한 동기부여 전략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