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오랜만에 시청률 10%(닐슨코리아 기준)를 넘긴 MBC 드라마가 나왔다. 지난 1월 30일 첫 방송한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 이야기다.
‘역적’은 1회 8.9%, 2회 10.0%를 기록했다. 전작인 ‘불야성’이 첫 회 6.6%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후, 최저 3.1%까지 떨어지는 등 초라하게 막을 내린 것과 달리, ‘역적’은 2회 만에 단숨에 10%를 넘기는 저력을 과시했다.
방송 전만 해도 ‘역적’은 기대작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약체에 속했다. 동시간대 방송되는 월화드라마로 2015년 MBC의 은인이었던 ‘킬미, 힐미’의 지성이 출연하는 SBS ‘피고인’, 국내외의 관심을 받고 있는 KBS2 ‘화랑’, 드라마의 명가가 된 tvN의 작품이자 ‘또 오해영’의 연출을 맡았던 송현욱 PD의 ‘내성적인 보스’까지 관심이 가는 작품들과 함께 편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역적’은 월화드라마 중 ‘피고인’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단 1, 2회로 총평하기는 어렵지만, 호들갑으로만은 볼 수 없다. 어떤 드라마는 초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면서도 혹평에 시달리기도 한다. 반면 ‘역적’은 방송 이후 시청률로 증명한 것뿐만 아니라 호평까지 받으며 다음 회도 기대케 하고 있다. ‘역적’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역적’은 요즘 대중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흙수저-금수저의 갈등과 반격을 그린 작품이다.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흙수저-금수저 이야기를 다뤘지만, ‘역적’은 돌려 말하지 않고 돌직구를 메시지를 전한다는 데서 특별하다. ‘역적’은 실존인물인 연산군 시절의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나,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백성을 위해 힘쓴 고전소설 ‘홍길동전’의 홍길동과 ‘아기장수 설화’를 모티프로 두고 있다.
극중 홍길동(아역 이로운 분)은 전설의 아기장수다. ‘아기장수 설화’에 따르면, 아기장수가 높은 신분에서 태어나면 최고의 장군이 되지만, 낮은 신분에서 태어나면 ‘나랏님’에 의해 온 집안이 망하게 된다. 그래서 씨종(천민)인 홍길동은 힘이 세지만 그 힘을 숨기고 살아간다. 홍길동의 아버지 아모개(김상중 분)는 “계급이 낮은 사람은 힘이 있더라도 그 힘을 쓰면 안 된다” “힘을 숨기고 살았더니 실제로 힘이 약해져버렸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힘의 원리에 대한 풍자이자 충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화처럼 펼쳐냈지만, 그 메시지는 확실하다.
‘역적’은 초반 흙수저의 비애를 그린 후 최고의 금수저인 왕, 연산군과 흙수저 홍길동의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다. 연산군은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잔인한 독재자이자 불통의 군주가 되는데, 이런 비극적인 왕과 달리, 홍길동은 천민의 신분이지만 그 신분을 뛰어넘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 그래서 ‘역적’의 부제를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고 표현했다. 이런 대비를 통해 김진만 PD는 신분과 상관없이 자신의 힘을 펼쳐내고 정의로서 사회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중들이 바라고 또 바라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최종 결론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길동은 영웅으로 그려진다. 어린 홍길동은 어머니가 양반에게 희롱당하는 모습을 보고 돌을 집어 던지는데, 그 돌은 바위를 깨뜨리고, 나무 정 중앙에 박히는 등 과거 히어로물처럼 다소 오그라들기도 한다. CG를 사용해 만들어진 이 장면들은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력과 상황의 당위성으로 시청자를 설득시킨다.
가장 큰 당위성은 단연, 홍길동의 아버지 아모개 역할을 맡은 배우 김상중의 연기력이다. 홍길동 이야기에 웬 아모개냐 하겠지만, 1~4회까지는 비기닝 단계로 홍길동의 어린 시절을 그린다. 때문에 홍길동의 아버지가 원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중요한 것은 홍길동 이야기 탄생의 뿌리가 아버지인 아모개라는 것이다. 성인 홍길동이 백성을 이끌고 연산군과 대결할 수 있는 이유는 아모개의 비극적인 운명과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씨종인 아모개는 1회에서 주인에게 순종적이지만, 2회에서는 분노에 가득 차 ‘흑화’ 된다. 흙수저로서 불공평한 처우를 받던 아내가 죽임을 당하자 결국 그는 주인을 살해하고 만다. 그렇게 홍길동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초반 ‘역적’은 여타 다른 드라마처럼 이것저것 추구하지 않고, 그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눈물 콧물 흘리며 진정성을 외쳤던 김상중의 연기에 시청자들은 몰입했고, 아모개와 홍길동의 사연을 본인 일처럼 응원하게 된 것이다.
다만 호평 받은 김상중이 이끈 1~2회와 달리 5회부터 30회까지는 윤균상이 잘 이끌고 가야 한다. 처음으로 주연 자리를 쥔 윤균상이 원톱 타이틀롤을 맡았고, 여주인공은 대중들에게 생소한 채수빈이 맡아 우려를 산 바 있다. 여기에 연산군을 맡은 김지석 역시 그동안 연기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낸 적 없는 배우다. 주목받은 ‘또 오해영’과 예능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서도 코믹한 이미지로 사랑받았기 때문에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연산군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걱정을 샀다. 하지만 1회 오프닝에 등장했던 이 인물들은 잠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했다. 특히 국악 전공 이하늬가 자신의 히든카드인 예인 역할을 처음으로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매주 월, 화요일 오후 10시 방송.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