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인터뷰] MC GUY, 꿈을 되찾은 ‘아이둘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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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소정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학창시절, 자신이 어른이 되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루지 못한 꿈은 미련으로 남는다. 세상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미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MC 가이(MC GUY, 본명 손명진)도 마찬가지였다. 뮤지션이 되고 싶었던 그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임상병리사가 됐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쥐게 된 자신을 마주하게 됐다.

MC 가이라는 이름은 노래 가(歌)와 기쁠 희(喜)라는 한자를 넣어 만들어졌다. 노래하는 기쁨을 아는 이 남자는 2016년 ‘러브 유(Love You)’와 ‘시간이 흐른 뒤에’, 총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서른다섯 살이 된 자신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임상병리사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뮤지션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인천의 한 병원 병리과에서 임상병리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작년 5월에 1집을 발표했고, 12월 20일 2집 시간이 흐른 뒤에 라는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지금은 신인이고 행사와 결혼 축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46쌍 정도가 제 노래와 함께 결혼했죠.”

Q. 나이가 좀 있으신데,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음악을 했는데 기회가 안돼서 그냥 꿈을 접어놨었어요. 그러다가 웨딩싱어를 하면서 제 자작곡을 불렀는데, 하객 분들이 좋아하시고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냐’고 물어 보신 게 용기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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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Q. 래퍼가 꿈이었었나요?

“원래는 춤을 췄어요. 학교에서 보면 책상 밀어 놓고 춤추는 애들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학교의 춤짱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가 학원 선생님이 그냥 교실 하나를 내주시더라고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하면서요. 어머니가 아시면 속 터지겠지만(웃음). 연극영화과를 가려고 했는데 집안의 반대가 있었죠. 어머니는 ‘남자는 기술이 있어야 된다’고 그러셔서 기계과를 갔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가서도 춤만 열심히 췄고 결국 자퇴했죠.”

Q. 이후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펼치셨던 건가요?

“그건 또 아니에요.(웃음) 어머니는 자퇴를 말리셨어요. 이후에 한번 쓰려지셨고, 집안 분위기도 좀 안 좋았는데 저까지 기대와 다르게 가니 더 속상해하셨던 거 같아요. 대신 집에서 공부하겠다는 믿음을 심어드렸죠. 하지만 또 공부를 안했어요. 키보드를 붙잡고 계속 노래를 만들었어요. 그랬는데 그것도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임상병리학을 배웠어요.”

Q. 그때부터 음악에 등을 돌리셨나요?

“결정적인 게 있었어요. 선배와 연예기획사를 쭉 출력해서 데모 구워가지고 돌아다녔어요. 담당 PD에게 곡을 들려주고, 결국엔 다 까였죠.(웃음) 아슬아슬한 경우도 있었고 그냥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렇게라도 해보니까 후회가 없어지더라고요. 절대 시간낭비가 아니었다고 봐요. 하염없이 두세 시간 기다려서 CD를 주고,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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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까지 발표된 노래에 대해 소개해주셨으면 해요.

“‘러브 유’는 와이프에 대한 마음을 담은 노래에요.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아니에요.(웃음) 아내한테도 솔직히 이야기했죠. 세 번째 여자랑 헤어진 다음에 쓴 곡이라고 했어요. 그냥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해서 노래를 씁니다. 그리고 ‘메리 미(Merry Me)’는 두 번째 여자 만났을 때의 감성으로 만들었습니다.”

Q. 직장에서는 음악 하시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긍정적으로 봐주세요. 무명이지만, 가수가 있는 거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시더라고요. 제 나이또래 선생님들은 가끔 자랑도 해주세요. ‘우리 병원에 가수 있다’하시면서요. 어떤 분은 또 이렇게 말해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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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Q. 뮤지션으로 활동해 얻은 수익은 기부한다고 들었어요.

“안산에 보육원이 67군데나 있더라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형편 때문에 가지고 놀지 못했죠. 그래서인지 행사비로 애들에게 장난감 사주는 게 좋더라고요. 한 센터원장님과 친해졌어요. 그 분이 매달연결을 시켜주세요. 행사 끝나고 받는 돈으로 애들 장난감 사줄 생각만 해요. 음악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행복입니다.”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어떤 가수가 되고 싶으세요?

“그냥 저는 진실 된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일도 음악도 봉사도 모두 진실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저만이 가진 음악 감성을 통해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싶어요. 댄스, 발라드, 뭐든지 해보고 싶어요.”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tissue@enter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