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유지훈의 힙합읽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허클베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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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정소정

힙합은 오로지 스웩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이별, 사회 부조리, 자기고백 등 무엇이라도 주제가 될 수 있죠. 여기에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해지면 힙합은 새로운 차원의 음악이 됩니다.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랩퍼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ON+힙합읽기]가 스토리텔링의 묘미를 전해드립니다.<편집자 주>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같은 수많은 명작을 집필한 세계적인 소설가입니다. 저는 그의 작품 가운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노래도 좋아하죠. 이 작품들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목이 같다는 것과, 명작이라는 것이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피노다인(Pinodyne)의 첫 번째 정규앨범 피노베이션(PINOvation)의 열세 번째 트랙입니다. 피노다인은 하이라이트 레코즈 소속 래퍼 허클베리피(Huckleberry P)와 프로듀서 소울피쉬가 결성한 그룹입니다. 2009년 ‘피쉬!(PISH)’라는 EP앨범으로 언더그라운드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그들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 정규앨범을 선보였고 또 다시 돌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허클배리피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래퍼입니다. 무대에 올라 쉴 틈 없이 폭발적인 랩을 선보이고 관객들을 열광시키죠. 랩 스킬 부분으로 보면 허클베리피는 우리나라 최고 레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그의 랩 실력과 더불어 작사 실력까지 엿볼 수 있는 트랙입니다. 훅이나 브릿지 없이 트랙을 가득 채우는, 소위 말하는 ‘마라톤 랩’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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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학생은 지루한 수업을 들으면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길 기도합니다. 하지만 A는 다릅니다. 오히려 영원히 수업시간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이유는 같은 반 학생들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A의 이름을 외치고 어딘가로 끌고 갑니다. A는 힘없이 일어나 친구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A는 어머니가 흑인인 혼혈아입니다. 친구들은 그의 피부색을 언급하며 언어·신체 폭력을 일삼습니다. 이날은 옥상이었습니다. A는 친구들의 주먹질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합니다. 혼잣말을 할 뿐입니다. ‘나 역시 너희들과 같은 언어를 써’ ‘검은 건반 역시 피아노의 일부야’라면서요. A는 기도합니다. 친구들의 폭력을 시작하게 했던 종소리가 이제 자신을 위해 다시 한 번 울리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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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상에 앉은 A는 수업 시간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 대신 귀를 막고 쉬는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죄 없는 종소리를 원망합니다.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겠죠.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의 시선이 자꾸만 신경 쓰입니다.

친구들을 향한 원망과 자신을 향한 자책은 뒤섞입니다. A의 어머니가 백인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요. 친구들은 “넌 우리와 똑같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도망 치고 싶지만 도망 칠 수 없는 악순환에 시달리는 그는 점점 더 마음의 문을 닫아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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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무력감입니다. 선생님은 가끔 다가와 친구들의 폭행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척만 할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라는 말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의 꼬투리가 될 뿐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어떤 사건으로 어머니의 눈물을 본 A는 스스로 조금 더 강해지길 바랐을 겁니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어머니를 다시 괴롭게 만드는 일이죠. 친구들에게 맞아 부풀어 오른 몸을 보여주면 어머니가 눈물을 쏟는 건 불 보듯 뻔 한 일입니다. A는 다시 한 번 속으로 삭히길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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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A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해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옥상 위를 바라보면서 말이죠. 하지만 자신이 사라진다고 해서 가해 학생들이 벌을 받는다거나,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마음을 접습니다.

A가 이 고난을 이겨낸다면 180도 다른 삶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A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길 꿈꿉니다. 그러나 A의 아이 역시 검은 피부일지 모릅니다. A는 아이가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A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친구들이 “넌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이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한국 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학교 내 인종차별을 담았습니다. 허클베리피는 피부색이 검고, 얼굴이 조금 다른 평범한 학생 A를 나쁜 친구들과 함께 두고 이를 지켜봅니다. 학교라는 좁은 공간은 이 문제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죠. ‘학교 종’이라는 단어를 확장시켜 이 씁쓸한 노래를 탄생시켰습니다.

한 차례 대한민국 사회에는 ‘코시안’이라는 키워드가 커다란 화두였습니다. 국제결혼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국제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자녀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 ‘코시안’이라는 단어도 부정적 차별의 의미가 있었기에 ‘온누리안(Onnurian)’이라고 수정되었습니다. 허클베리피는 4분짜리 짧은 랩으로, 교실에 앉아 종이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수많은 A에게 위로를 건넨 셈입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tissue@enter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