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0일 만에 ‘朴대통령 세월호 7시간 행적’ 답변 내놓아…새로운 결정타 없는 “짜깁기 수준”
세월호 참사 이후 약 1,000일이 지나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당일 행적과 관련해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로 볼 만한 결정타는 없었다.
박 대통령 측은 분 단위로 쪼개 자세한 답변을 내놨다고 주장했으나 지난 5일 열린 2차 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윤전주 행정관의 증언 내용도 일부 누락돼 완벽한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헌재도 대통령 측의 석명이 부족하다며 보충할 것을 요구했다.
10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3차 변론에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박 대통령 측이 내놓은 A4용지 16장 분량의 ‘재판부 석명 사항에 대한 답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53분 외교안보수석의 서면보고를 받고 검토한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이후 오전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받은 ‘세월호 사고 상황 및 조치 현황 보고서(1보)’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첫 보고로, 이는 박 대통령이 사고를 처음으로 인지한 시점이다.
15분 뒤 박 대통령은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해 상황 파악을 포함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에 만전을 기)할 것. 여객선 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해 누락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7분 뒤 다시 김 실장에게 전화해 ‘철저히 구조하라’고 재차 지시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 30분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해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언론 브리핑 내용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후 10시 36분 사회안전비서관의 여객선 침몰 사고 상황 보고서(1보)를 받았으며 40분에는 국가 안보실 보고서(2보), 57분에는 사회안전비서관의 상황 보고서2보), 11시 20분에는 국가안보실 보고서(3보)가 차례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10시 첫 보고를 받은 이후 10시 15분과 22분, 11시 23분에 김 실장과 통화하고 10시 30분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구조 지시를 내린 셈이다.
이어 12시 50분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의 전화를 받아 10분간 기초연금법 관련 국회 협상 상황을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세월호 구조와 관련된 지시는 그날 오전 내내 김 실장과 세 번, 해경 청장에 한 번 밖에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박 대통령 측은 최 수석과의 통화를 입증할 통화기록을 증거로 제시했으나 김 실장과 통화한 부분에 대해서는 통화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헌재로부터 이를 뒷받침할 통화기록을 제출할 것을 요구 받았다.
행정자치비서관실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 보고는 12시 54분에 이뤄졌으며, 이후 오후 1시 7분 사회안전비서관의 상황 보고서(6보)를 검토하고 13분 김 실장으로부터 전화로 추가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실장이 1시 13분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은 “190명을 추가 구조해 총 370명(사망자 2명)을 구조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1시 30분이 조금 지나 국가안보실에서 1시 30분에 팽목항 입항이 예정된 190명 탑승 진도 행정선이 입항하지 않자 해경에 관련 상황을 확인하도록 촉구했다. 이후 45분경 해경ㄱ에서 190명 추가 구조가 아닌 것 같다는 취지의 보고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후 2시 11분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전화해 이와 관련해 정확한 구조 상황을 확인하도록 지시했으며, 답변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중대본을 방문하기 위해 준비하라고 지시한 시각은 오후 3시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많은 의문을 남긴 박 대통령 머리 손질은 오후 3시 35분경부터 20여 분간 이뤄졌다고 전했다. 다만 “미용 담당자는 오후 3시 22분부터 4시 24분까지 총 62분 동안 청와대에 머물렀다”고 덧붙였다.
이어 경호실로부터 중대본 방문과 관련해 준비가 완료됐다는 보고를 4시 30분에 받았으며, 5시 11분 사회안전비서관실 상황보고서(8보)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박 대통령은 오후 5시 15분부터 30분까지 중대본에 방문해 구조상황 등의 보고를 받고 ‘생존자를 빨리 구하라’, ‘중대본 중심으로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라’, ‘피해자 가족들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 ‘일몰 전 생사를 확인해야 하니 모든 노력을 기울여라’ 등 4개의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또한 대리인단은 이후에도 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돌아와 국가안보실, 관계 수석실, 해경 등으로부터 세월호 구조 관련 상황을 계속 보고 받으며 구조를 독려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후 11시 30분경 직접 진도 팽목항 방문과 지원을 결심하고 정무수석실에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리인단은 분 단위로 쪼갠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첫 보고가 이뤄지기 전인 오전 9시 53분 이전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떠한 설명도 없으며, 박 대통령이 위치한 장소는 오후 5시 11분 중대본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머리 손질(관저)을 한 시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무실’로 표기돼 있다.
국회 측은 지난 5일 윤전추 행정관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집무실이라는 표현과 관련해 “(청와대)본관 집무실을 가리켜 집무실이라고 하지, 관저에 있는 것을 집무실이라고 하는 게 가능한 것이냐”며 “관저 개념을 상용화해서 헌재 심판정에서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리인단은 “관저 집무실은 역대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빈번하게 이용한 사무공간으로 책상과 컴퓨터, 서류철로 가득하다”며 “대통령이 그곳에서 전자결재를 하거나 주로 보고서를 읽고 행정부처, 비서실 등과 전화를 하며 각종 보고를 받고 업무지시를 하는 곳”이라고 대응했다.
박 대통령 측의 주장대로라면 박 대통령이 오후 3시 35분 머리 손질을 한 부분을 제외하면 중대본을 방문하기 위해 떠나기까지 집무실에 있었으며 머리 손질만 관저에서 한 것이 된다.
또한 윤 행정관은 증인신문에서 오전에는 안봉근 전 비서관이, 오후에는 정호성 전 비서관이 관저에 왔다고 밝혔으나 답변서에는 당일 오전 박 대통령의 구강 부분에 필요한 약(가글액)을 가져온 간호장교와 외부인사로 중대본 방문 직전 들어왔던 미용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언급했다.
이에 국회 소추위원 측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박 대통령 측의 세월호 7시간 제출자료는 짜깁기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윤지 기자 yjlee@etnews.com